집값 잡을 ‘최강 카드’지만 反시장적… 양날의 칼 분양가상한제[인사이드&인사이트]

이새샘 기자

입력 2019-07-22 03:00 수정 2019-07-2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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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아파트까지 확대 방침 논란
철회 靑청원 1만여명 참여 “대출규제땐 부자들만의 청약잔치”
1977년 첫 도입… 과열때마다 등장
당장은 분양가 인하 ‘약발’ 있지만 공급 부족 인한 집값 상승 재연 우려
김현미 “실효성 있는 시행령 준비” 전문가 “비정상적 시장 시각 바꿔야”



이새샘 산업2부 기자 iamsam@donga.com
“녹물이 나오고 벌레가 나오는 집에서 몇십 년을 생활하면서 재산세 성실히 냈다. 재건축 이후 그저 그 집에 다시 입주하기를 기다리는 행동이 투기인가.”

“(분양가상한제로) 재개발·재건축 막으면 청약경쟁이 더 치열해질 텐데 서민은 집 가질 생각하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다. 대출 규제가 있으니 그 청약은 현금 있는 부자들만의 잔치가 될 테니….”

분양가상한제 확대 방침을 철회해 달라고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내용 중 일부다. 관련 청원 3건에 현재까지 서명한 인원은 1만 명이 넘는다.


○ 술렁이는 부동산 시장

정부가 민간택지까지로 분양가상한제 확대 방침을 밝히면서 부동산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가장 바빠진 곳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이다. 정부의 상한제 카드가 사실상 이들을 겨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18일에는 강남 개포 주공 1·4단지, 강동 둔촌 주공, 서초 방배5구역과 신반포3차·경남, 송파 진주, 은평 대조1구역, 동대문 이문3구역 등 서울 8개 단지 조합장은 세종시 국토교통부를 방문해 이주·철거 중인 조합에는 분양가상한제를 소급해서 적용하지 말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차선책으로 당초 추진 중이던 후분양제를 포기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 보증 심사를 받겠다는 뜻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분양가상한제를 실시하면 각 지방자치단체의 분양가심의위원회는 분양가가 적절히 책정됐는지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심의한다. 기본적으로는 택지비와 건축비, 여기에 가산비(추가공사비) 등을 더한다. 지역과 시세 등에 따라 다르지만 부동산 업계에서는 기존 분양가의 20∼30%까지 분양가가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 40여 년 전 등장해 지금까지 존속

분양가상한제는 1977년 ‘분양상한가’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됐다. 당시 중동에서 벌어들인 오일머니가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며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다. 급격한 아파트 가격 인상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자 정부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분양가가 넘지 않도록 통제했다. 1989년부터는 택지비와 건축비 등 시장가격을 반영하는 원가연동제로 통제 방식을 바꿨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건설 경기가 침체되자 정부는 규제를 풀고 분양가를 전면 자율화시켰다.

분양가상한제가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분양가 자율화 이후 2000년대 초반 주택경기 회복과 함께 분양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1998년 3.3m²당 512만 원이었던 서울 지역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2006년 1546만 원으로 약 3배로 뛰었다. 특히 판교신도시와 은평뉴타운 등 공공택지에서 분양되는 아파트의 분양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정부는 2005년 공공택지 아파트에 분양가상한제를 다시 도입했다. 이후 2007년 1·11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며 분양가상한제를 민간택지로도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혔고, 그해 9월 본격 시행됐다.

2007년은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 시장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할 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대출 등이 막히고 시장에 돈이 돌지 않자 부동산 시장에서도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분양가상한제 전면 폐지를 추진했지만 분양가 급등을 우려하는 여론에 밀려 제도는 유지됐다. 이후 2015년 박근혜 정부가 민간택지의 경우 특정 요건에 맞는 지역에만 적용하도록 기준을 확 낮춰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 분양가상한제로 엇갈리는 희비

집값을 잡고 싶은 욕구가 있는 정부에 분양가 상한제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의 ‘만능 칼’이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이 과열될 때는 상한제 카드를 꺼냈다가, 주택 경기가 침체되면 다시 카드를 집어넣는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해 왔다.

분양가상한제는 여러 정부를 거쳐 시행될 때마다 논란의 대상이 됐고 여론은 양분됐다. 이를 통해 이득을 얻는 집단과 손해를 보는 집단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분양가가 낮아지면 직접적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부류는 이른바 ‘로또 청약’에 당첨된 이들이다. 시세 대비 낮은 분양가로 청약에 성공해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시세 차익을 누릴 수 있다.


반면 일반 분양을 통해 사업비를 충당하는 재개발·재건축 조합원들은 분양가가 낮아지면 그만큼 자체 분담금이 늘어나게 된다. 분양가와 분담금 등을 확정하는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조합이라면 분담금을 다시 조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아파트를 지어서 파는 사업주체(시행사)도 수지를 맞추기 힘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주택 공급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건설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 장기적인 주택 가격 안정 효과는 ‘글쎄’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데도 정부에서 분양가상한제를 실시하는 이유는 주택 가격 안정이라는 ‘대의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장 분양하는 아파트 가격은 낮아질 수 있겠지만 이 카드로 전체 주택가격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2007년 정부가 민간택지에도 분양가상한제를 실시한 후 주택 가격 추이를 보면 전문가들의 우려가 빈말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한국감정원의 아파트 실거래가격지수(2017년 11월 가격을 100으로 환산)를 살펴보면 정부가 민간택지로 분양가상한제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직후인 2007년 1월 72.5였던 지수는 2007년 5월 71.9로 조금 내리는 듯하더니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1년 뒤인 2008년 5월엔 82.5까지 올랐다.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한 것은 2008년 하반기부터였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본격화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분양가상한제에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1970년대 처음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한 뒤 주택 공급이 축소되면서 1980년대 말 전국적으로 전세 대란이 일어났다. 1987, 1988년 2년간 전세 가격 상승률은 32.6%나 됐다.

2005∼2007년 분양가상한제 도입 때는 청약에 성공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른바 ‘로또 청약’ 열풍이 불면서 청약통장을 불법으로 사고파는 일도 많아졌다. 이번에 정부가 민간택지에 분양가상한제를 확대 적용하면 이러한 ‘로또 청약’ 열풍과 공급 부족으로 인한 신축 아파트 가격 상승이 재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시장친화적인 대안 연구해야

처음 시행하는 제도가 아닌 만큼 정부도 과거의 부작용을 잘 알고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최근 “실효성 있는 시행령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로또 청약을 막기 위해 전매제한을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매제한은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이 일정 기간 아파트를 팔 수 없도록 하는 제도다. 채권입찰제처럼 아파트를 분양받아 거둔 시세 차익을 환수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보완책을 강구해야 하는 이유는 분양가상한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는 맞지 않는 ‘어색한 옷’이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요 증가에 따른 가격 상승을 통제하면 장기적으로 공급 부족이 일어나고, 비교 우위에 있는 상품인 신축 아파트가 더욱 희소해지며 가격이 급상승하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생산에 시간이 걸리는 상품인 아파트는 공급 부족으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정부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디자인했다고 알려진 김수현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2007년 자신의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원가 공개나 (분양가)상한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람직한 조치는 아닐지언정 부동산 시장의 질서가 아직 잡히지 않고 인플레 심리가 난무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분양가상한제가 반시장적 정책인 것은 맞지만,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쓸 수밖에 없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비정상적이라고 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중요한 것은 수요에 맞게 주택을 어떻게 적절히 공급하느냐, 한곳으로 쏠리는 수요를 어떻게 분산하느냐인데 정부가 단기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는 데에만 급급한 것 같다”고 했다.

집값 폭등이 사회문제를 일으킨다면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 그런데 반시장적 성격이 강한 정책을 반복해서 쓰는 것이 과연 지혜로운 것일까. 게다가 2007년 민간택지로 분양가상한제를 확대한 뒤 나타난 부작용에 대한 정부의 분석과 대안은 제대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시장에서 ‘제대로’ 효과를 낼 만한 대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새샘 산업2부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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