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돌려줘야 이사를 가지”…“세입자 못 구해 내줄 돈 없어”

주애진 기자

입력 2019-02-18 03:00 수정 2019-02-1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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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집주인 전세금 분쟁 확산


서울 성동구에 사는 이모 씨(50)는 요즘 전세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 계약이 지난달 말 끝났지만 전세금 6억 원을 돌려받지 못해서다. 집주인은 “다음 세입자를 찾을 때까지 전세금을 못 준다”며 버티고 있다. 이 씨는 결국 미리 구한 새 집 계약까지 날리고 말았다. 답답한 마음에 대한법률구조공단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서 상담도 받았다. 그는 “괜히 분쟁이 커지면 전세금을 떼일까봐 한두 달만 더 기다려 보기로 했지만 초조해 죽겠다”고 했다.

세입자를 찾기 어려운 ‘역전세난’이 심해지면서 전세금 반환을 둘러싼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전세금 반환보증 지급 금액이 급증한 데 이어 분쟁조정 신청 접수도 10건 중 7건이 전세금 반환 관련이었다.

17일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분쟁 조정 신청 건수는 2515건이었다. 이 중 1801건(71.6%)이 전세금 반환과 관련된 분쟁이었다. 유지·수선보수(201건)나 계약갱신 문제(143건), 손해배상(156건) 등은 분쟁 조정 신청 건수가 훨씬 적었다.


분쟁조정은 임대차계약 관련 분쟁이 생겼을 때 세입자가 소송보다 간편한 절차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단, 집주인이 조정에 응해야 진행돼 강제성은 없다. 전세금 반환과 관련한 분쟁 상담과 조정 신청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올 1월 신청 건수는 191건으로 작년 1월(173건)보다 10.4% 늘었다. SGI서울보증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 반환보증 지급액도 지난해 1607억 원으로 2017년 대비 4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전세금 반환 분쟁이 늘어나는 건 최근 입주물량 증가로 전세 매물이 늘면서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져서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85.5까지 내려앉았다. 2009년 2월 2일(77.6)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이 지수는 0∼200 사이로 100 아래로 떨어질수록 전세물량 대비 전세 수요가 적다는 의미다.

전세금 하락세가 깊어지는 것도 역전세난이 심해진 요인이다. 전국의 아파트 전세금(KB국민은행 자료)은 지난해 11월 5일 이후 14주 연속 하락했다. 특히 서울의 전세금은 11일 기준 일주일 만에 0.13% 내리며 하락폭을 키우고 있다.

전세금이 내리면서 집주인이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충당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전셋집이 빠지지 않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 같다고 걱정하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한 누리꾼은 ‘3월 10일 만기를 앞둔 2억4000만 원짜리 전셋집에 살고 있는데 주변 전세금 시세가 2억 원으로 내려가자 집주인이 대출을 받아 4000만 원을 보태주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역전세난 우려가 큰 만큼 분쟁조정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등 세입자 보호를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주인들이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돌려주고 새 세입자를 구하면 갚는 상품을 도입하는 등 역전세난의 부담을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이 부담하는 방식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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