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東 현장]영자의 전성시대 ‘588’…집창촌 지우고 청량리 시대 열까

동아닷컴 이은정 기자

입력 2018-04-19 03:00 수정 2018-04-1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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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 오백팔십팔이 아니라 오팔팔이라고 불리는 곳. 정확한 행정구역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다. 청량리역에서 나와 왼쪽 골목길로 접어들면 쭉 이어지는 커다란 유리창의 집창촌이 있었다. 일본말로 ‘하코방(판잣집)’ 같은 집이 150여 개나 있던 장소다. 밤이 되면 홍등이 켜지고 묘령의 여자들이 멍하니 앉아만 있어도 슬금슬금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1975년 김호선 감독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주요 배경이기도 했던 이곳은 현재 대부분 철거된 상태다.

서울의 3대 집창촌으로 불렸던 청량리가 달라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환락가였던 이곳이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촌으로 바뀐다. 청량리 588 일대엔 오는 2021년까지 지하8층 지상65층짜리 주상복합건물 4개동과 호텔·백화점·오피스텔이 들어선다. 지난 18일 찾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 일대는 성매매업소였던 건물들이 말끔히 정리된 상태였다. 철거민들이 재개발추진위원회를 비난하는 현수막도 사라진 후였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청량리4구역 재개발


청량리4구역(588 일대) 재개발 사업은 1994년 12월부터 추진됐으나 집창촌 종사자들과 인근 상인들의 반대로 사업 진척이 어려웠다. 그러다 2004년 집창촌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청량리4구역 재개발사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후 서울시가 2010년 성바오로병원과 주변 상가, 청량리 588을 통합해 재개발하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청량리4구역은 성바오로병원과 상가 부지 1만7031㎡를 제외한 2만6330㎡로 좁혀졌다.

당시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청량리4구역이 2015년 착공해 2019년이면 완공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으나 이주 비용을 둘러싸고 추진위와 집창촌 포주, 성매매 여성들의 입장 차이가 컸다. 특히 2016년 5월부터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자 업주와 성매매여성들의 반발이 극심했다. 토지주와 건물주로 구성된 도시환경정비사업추진위원회에 반발해 충돌 직전의 상황까지 갔고, 일터를 잃은 일부 성매매여성은 분신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업소가 허물어질 때도 몇몇 업소는 영업을 계속했지만 지난해 말 모두 문을 닫았다.


○주변 아파트 주민 ‘집값상승’ 기대 vs 다세대주택 주민 ‘쫓겨날까’ 걱정

청량리 재개발을 보는 지역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주변 아파트 주민들은 낙후된 이미지를 벗고 생활편의시설이 확대되면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청량리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청량리 롯데캐슬이 불과 1년 사이에 2억 정도 올라서 주변 아파트도 동반 상승할 거라는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면서 “답십리와 종로, 광화문 쪽에서도 청량리4구역 재개발 아파트의 예상 분양가와 프리미엄을 문의하는 전화가 많이 온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오는 6월 입주하는 동대문구 전농동 ‘동대문롯데캐슬노블레스(1009가구)’는 전용면적 59㎡ 기준 입주권 프리미엄이 올초부터 3억원을 웃돌았다. 올해 2월엔 전용 84㎡ 입주권이 8억9500만 원에 거래돼 최초 분양가(5억9600만 원)보다 2억9000만 원가량 올랐다.

주변 래미안위브(2014년8월입주) 전용 84㎡도 지난해 4월 6억5400만 원에 거래됐던 매물이 이달에는 8억7000만 원에 팔렸다. 1년 새 2억1600만 원이나 집값이 오른 것이다.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는 미주아파트도 집값이 요동치고 있다. 이 아파트 전용 86㎡는 지난해 2월까지만 해도 5억 초반에 시세가 형성됐으나 올해 3월 7억8000만 원에 거래됐다.

반면 다세대주택이나 노후 빌라에 사는 주민들은 걱정이 많다. 재개발구역으로 묶여 이주비나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나가게 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전농동에서 20년째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53)씨는 “노숙자나 술 취한 사람들이 줄어들고 동네가 깨끗해진다고 하니 반갑지만 혹시나 상가 임대료가 오를까 봐 걱정이다”면서 “2층짜리 작은 다세대주택에 살고 있는데 개발이 되면 보상이 적을 것 같아 차라리 재개발이 안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청마용성’…마포·용산·성동 아성 위협하는 청량리
청량리는 최근 ‘청마용성’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청마용성은 강북의 주요 부동산 상승지역인 마포·용산·성동구를 칭하는 ‘마용성’이라는 말에 청량리를 추가한 신조어다. 실제로 청량리가 속한 동대문구는 강북에선 마포·성동·광진·용산구 다음으로 집값 상승세가 가파르다. 부동산114 자료를 보면 지난 1년간 성동구의 집값이 23.7% 상승해 가장 많이 올랐고, 광진구(21.62%)·마포구(17.38%)·용산구(14.84%)·동대문구(13.1%) 순이었다. 동대문구 집값 상승률은 인근 중랑구(6.26%)·성북구(7.09%)·강북구(6.03%)를 크게 웃돈다. 교통호재와 도심접근성을 등에 업고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청량리는 뛰어난 교통망이 최고의 장점으로 꼽힌다. 청량리역 앞에는 60여 개 노선이 지나는 버스환승센터가 있어 도심 접근성이 좋다. 청량리 버스환승센터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1만5000여 명으로, 서울 버스정류장 가운데 사당역 정류장(3만6710명) 다음으로 많다. 청량리역에는 지하철 1호선과 경의중앙선, 경춘선 ITX, KTX 등 각종 철도망도 연결돼 있다. 교통 여건은 더 좋아질 전망이다. 지하철 분당선이 청량리역까지 연장돼 오는 8월 개통된다. 이 밖에 인천 송도에서 청량리역을 거쳐 경기 남양주 마석까지 닿는 GTX B노선과 경기 군포 금정, 청량리역, 경기 의정부를 잇는 GTX C노선 사업이 검토 중이다.

최대 약점은 학군이다. 걸어서 갈 만한 초등학교가 없다. 신답초, 전농초, 전곡초가 있지만 성인 걸음으로 10분가량 걸린다. 인근 중학교는 동대문중, 전농중밖에 없고 고등학교는 버스 두 정거장 거리에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롯데건설이 공급하는 청량리4구역 재개발단지 전용면적 84㎡ 분양가는 7~8억 대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서울 집값 자체가 이미 오른 상태여서 비강남에서 7~8억짜리 30평대 아파트가 나온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권일 팀장은 “청량리역 주변은 교통량이 많고 철길이 지상과 지하 모두 다니기 때문에 어수선하고 낙후된 이미지가 아직 남아있다“며 “하지만 교통 개발호재가 많고 입지가 우수해 집값 상승 여력이 충분해 보인다”고 했다.

동아닷컴 이은정 기자 e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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