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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부동산]부동산은 3년 묵히면 인삼되고 5년 묵히면 산삼된다?

동아일보

입력 2018-09-13 17:37:00 수정 2018-09-13 17: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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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사이 서울 집값이 수천만 원 올랐습니다. 누군가는 집을 사지 못해서 또 누군가는 집을 너무 빨리 팔았다고 한탄합니다. 집값 때문에 가정불화도 생겼습니다.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청년도 많습니다. 집값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게 ‘스펙’


“요즘 ‘10억’은 옆집 애 이름이에요. 예비 부부 둘이 합쳐 3억 원이 넘는 돈이 있어도 서울에 집을 구하기 어렵답니다. 이번에 결혼하는 친구가 무척 애를 먹고 있더라고요. 직장이 강남과 여의도라 지하철 9호선이 지나는 동네를 둘러보는데 가양역 근처에 깨끗한 빌라의 전세가 4억 원이었어요. 대출 받아도 아파트는 언감생심이래요. 충정로역 근처는 8억~9억 원입니다.” -김주성 씨(32·유통업)

“요즘은 결혼상대로 ‘모태 서울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최근 소개 받은 남자가 성북구에서 나고 자랐대요. 제가 지방 출신이라고 하니 지방 부동산 경기를 걱정해줬어요. 그 남자는 1년 동안 집값이 1억1000만 원 올랐다고 은근히 자랑했어요. 결국 연락이 흐지부지 끊겼습니다. 서울 집값이 하도 높으니 ‘서울에서 태어난 게’ 스펙이 되는 세상이네요.” -김예슬 씨(25·회사원)

“저는 아직 취업준비생이고 아버지는 정년퇴직하셔서 돈 버는 사람이 없어요. 하지만 부모님께서 서울 구로구에 아파트를 한 채 갖고 계세요. 취직한 친구들과 함께 술 한 잔 하는데 오히려 ‘넌 서울에 집이 있잖아’라며 부러워하더군요. 평소엔 자존감이 바닥이었는데 묘하게 안도감이 느껴졌습니다.” -이모 씨(29·취업준비생)

“전세 보증금이 부족해 월세방을 구했어요. 그나마 친구와 함께 살아서 각각 30만 원씩 냅니다. 없는 돈 쪼개가며 적금을 붓느라 월말이면 즉석밥에다 김자반을 비벼 먹어요. 100만 원씩 적금을 들어도 1년에 겨우 1000만 원 정도 모으는데, 서울 집값은 하루에 2000만 원씩 오른대요. 제 삶을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지 않아 결혼은 포기했습니다.” -김모 씨(26·회사원)

●꼭 집을 사야 하나

“도발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꼭 집을 사야 하나’라는 질문에 의문이 듭니다. 앞으로 부동산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기대 안 합니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해요. 직장인 월급으로 서울에 집 못 삽니다. 대출 받으면 원금에 이자를 더해 갚아야 하고 각종 세금을 내야 하죠. 전세로 살면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집주인이 처리해요. 전세금도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죠. 매번 이사하기 번거롭지만 큰 돈 벌 생각 않고 속 편히 살고 싶어 계속 전세로 살 생각입니다.” -이상재 씨(30·교육업)

“지난해 4월 서대문구 독립문역 부근 아파트를 사려고 했어요. 전용면적 84㎡짜리가 3억 원 정도 했죠. 하지만 서민에겐 큰돈이에요. 결국 대출을 받아 종로구의 2억 원짜리 빌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사려던 아파트가 지난달 7억 5000만 원까지 올랐어요. 이젠 현금 5억 원은 있어야 구입할 수 있습니다. 후회스러워 매일 시세를 봅니다. 남편과 아들이 ‘지나간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말자’고 말릴 정도입니다. 이젠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서울에 내 집을 살 수 없다’는 현실을.”―김도연 씨(56·자영업)

“비혼주의 고교생입니다. 나중에 원룸에서 혼자 살 거예요. 결혼하려면 집이 필요하고 자유는 포기해야 하잖아요. 아파트는 비싸서 못 산다는 얘기를 하도 들어서 저렴한 원룸에서 자유롭게 살기로 마음먹었어요.” -김모 군(16·청량고 1학년)

●‘강남’이 무조건 잘못은 아니잖아요

“부자들은 ‘부동산은 3년 묵히면 인삼되고 5년 묵히면 산삼된다’는 속설을 실천하고 있죠. 정부 고위관료와 국회의원도 강남에 많이 살지 않나요. 자신들은 강남에 살면서 우리는 강남에 살고 싶어하면 안 되나요. 과거에도 돈 없는 사람들은 강남 살기 힘들었지만 이젠 아예 불가능한 상태가 됐습니다.” -조기호 씨(30·회사원)

“앞으로도 강남구나 서초구에 계속 살고 싶어요. 모든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어느 지역으로 가더라도 교통이 편해요. 학군, 치안도 괜찮으니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아닐까요.” -이현진 씨(21·강남구 대치동 거주)

“빌라와 원룸은 잘 안 찾지만 아파트는 매물이 적은 데도 찾는 손님이 많습니다. 강남은 계속 오른다니 비싸도 계속 문의가 와요. 지방에서도 전화가 잦아요. 강남 시세를 미리 알아본 뒤 서울로 직접 찾아오는 것이죠. 강남 3구뿐만 아니라 성동구까지 원래 6억~7억 원이었던 집값이 12억~15억 원으로 거의 2배나 올랐어요. 5개월 만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죠.” -김모 씨(32·강남 소재 공인중개사)

●혼란스러운 지방 집값


“울산 동구 자체가 중공업 중심으로 생계를 꾸리는데 경기가 침체돼 집값도 내려갔어요. 1년 사이 저희 집은 2000만 원 떨어졌고 친구 집은 조금 오래된 아파트라 4000만 원이나 하락했죠. 서울 집값은 오른다고 하는데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예요. 중요한 건 지역경제입니다. 일자리가 없는데 누가 들어오고 싶겠어요. 지역경제가 호황이면 인구 유입이 늘어 부동산 경기도 살아나죠. 지역 경제에도 신경써주세요.” -이모 씨(44·울산 동구 거주)

“수도권에서 집 사기 어려울 것 같아 강원도에 자리 잡았습니다. 아파트를 구입하려고 알아봤는데, 전용면적 84㎡짜리 속초의 새 아파트 가격이 3억 원이나 하더군요. 그런데 일부에선 미분양이 됐다는 소문이 들려 너무 혼란스러워요. 신규 물량이 너무 쏟아져 집값이 떨어질까 봐서 걱정됩니다. 전셋집을 마련하기로 했어요.” -박모 씨(31·강원도 거주)

“광주 남구 봉선동과 광산구 수완동은 집값이 많이 올랐어요. 원래 비싼 지역이었는데 한두 달 새에 더 올랐습니다. 이유를 모르겠어요. 구입 희망자는 많은데 매물은 적은 상황입니다. 4월부터 시작된 양도세 중과 정책으로 더욱 집을 내놓지 않고 있죠. 광주에서도 양극화가 심합니다. 북구는 가격이 떨어졌어요. 사람들이 새 아파트로 이사하니 오래된 아파트가 많은 북구의 집값은 급락하는 상황이죠.” -김모 씨(53·광주 소재 공인중개사)


●공급량 늘리는 대책 마련을


“지역별 맞춤 정책이 필요합니다. 서울 집값을 잡으려다 지방 경제까지 망가뜨려선 안 됩니다. 지방은 미분양 가구가 6만 호를 넘었습니다. 지방 경제가 어려워 경제력을 가진 유효 수요자가 줄어들고 있어요. 강원도는 올림픽 특수가 사라져 부동산 경기가 다소 주춤하는 상황입니다. 호남지역은 주택공급률이 111%를 넘었지만 신규 공급이 없어 가격이 오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에 386만 9000여 가구가 사는데 주택 공급량은 280만 가구가 안 됩니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선 안 되죠. (산림은 훼손하지 말고) 그린벨트 내에서 잡종지나 전답을 중심으로 개발을 추진해 주택 공급을 늘리면 시장이 다소 안정될 것입니다. 강남에도 이런 땅이 많아요.”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다주택자 규제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수요 억제는 단기적인 효과밖에 줄 수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놓지 않고 재건축 규제도 강화돼 공급이 중단기적으로 더욱 줄어들게 된 상황이에요. 지방은 더 사정이 좋지 않아 서울까지 원정 투자를 오니 수요는 또 늘어나죠. 대출 규제로 수중에 현금 수억 원이 있는 사람들만 집을 살 수 있는 상황입니다.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려면 당장 집값을 잡기 위한 정책보다 공급량을 늘리면서 중장기적인 대책을 추진해야합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이원주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성균관대 사회학과 4학년, 서재의 인턴기자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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