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한채 공시價 올랐다고 기초연금 안 주겠답니다”

박재명 기자 , 주애진 기자

입력 2018-07-16 03:00 수정 2018-07-16 04:26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정부 ‘공시가격 현실화’ 검토한다는데… 먼저 겪은 제주선 부작용 속출

“공시가격 때문에 제주 전체가 난리 났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 소속 노인복지 담당 공무원 A 씨는 업무상 가장 큰 애로점으로 ‘공시가격’을 꼽았다. A 씨는 “기초연금 등 노인복지는 대부분 부동산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받게 된다”며 “최근 몇 년 새 제주 부동산 공시가격이 급등하면서 ‘내가 왜 기초연금 대상에서 탈락했느냐’고 항의하는 어르신이 한두 명이 아니다”고 했다.

정부가 부동산 세제개편 방안으로 보유세율 인상과 함께 ‘공시가격 현실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적지 않은 부작용이 잠복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최근 5년 새 공시가격이 크게 오른 제주는 복지, 교육,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대부분 저소득층이 혜택을 못 받게 된 경우다.


○ “집 한 채뿐인데…” 기초연금 못 받는 제주 노인

1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제주도의 토지 개별공시지가는 2016년 한 해에만 27.77% 오르는 등 올해에 2013년 대비 평균 110% 상승했다. 2013년 공시지가 1억 원이던 제주 토지의 공시지가가 이제 약 2억1000만 원에 이르게 됐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제주도 주택 공시가격 이의신청 건수는 2014년 211건에서 올해 636건으로 3배 가까이로 늘었다.

급격한 공시가격 인상의 가장 큰 부작용은 복지제도 교란이다. 공시가격 급등에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다. 올해 제주에서 기초연금을 새로 신청한 고령자 4396명 가운데 1833명(41.7%)이 수급 대상에서 탈락했다. 전국 평균 탈락률(25.4%)보다 15%포인트 이상 높다.

제주시 일도동에 있는 주택 때문에 기초연금 수령 대상자에서 탈락한 고모 씨(66)는 “소득이 없고 집을 팔아 이득을 볼 생각도 없는데 공시지가가 올라 혜택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면 억울하다”고 했다.

주택 공시가격의 상승은 학생들의 장학금 수령에도 영향을 준다. 제주대는 2015년 국가장학금 중 소득이 낮은 학생에게 지원하는 ‘1유형’ 장학금 수령액이 138억6700만 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0억8700만 원으로 12.9% 줄었다. 제주대 측은 “공시가격 급등이 영향을 끼친 것 같아 한국장학재단에 제주 학생들의 상황을 고려해 달라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최근 장기 농지 소유자의 재산세를 30% 인하해 주기로 결정했다. 이 역시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다.


○ “공시가격, 제도 선보완 후 현실화율 제고해야”

매년 경신되는 공시가격이 영향을 미치는 곳은 이외에도 많다. 공식적으로 공공 분야에서만 61개의 목적으로 쓰인다. 우선 부동산 세제와 관련해서 보유세(재산세, 종합소득세)와 거래세(양도소득세, 취득·등록세) 과세 기준이 된다. 공시가격 인상이 사실상 증세에 해당하는 이유다. 복지 분야에서도 장애인 연금, 저소득층 병역 감면, 국민임대주택, 신혼부부 전세임대주택 등의 대상자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공시가격 인상 방침만 밝혔을 뿐 개별 주택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얼마인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공시가격 인상이 외국에 비해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제주의 공시가격 급등은 지가 변동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높은데 당국에서는 공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며 “공시가격을 올릴 때는 전문가를 통해 정확히 평가한 뒤 이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명 jmpark@donga.com·주애진 기자

전문가 칼럼



부자동 +팔로우, 동아만의 쉽고 재미있는 부동산 콘텐츠!, 네이버 포스트에서 더 많이 받아보세요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