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보다 경험”…주택·서재·주방 ‘공유’ 트렌드 확산

주애진기자 , 황성호기자 , 도쿄=김범석 기자

입력 2018-08-10 15:44 수정 2018-08-1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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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드실 분? 같이 구매할 사람 있으면 N분의1로 나눠 냉장고에 넣어 드릴게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단톡방)의 알림이 울렸다. 공유하우스에 함께 살고 있는 입주자들이 모인 단톡방이다. 참여 의사를 밝힌 뒤 수박 값은 카카오페이로 부쳤다. 집에 와 보니 대형 냉장고 속 그의 방 번호가 적힌 하얀 플라스틱 바구니에 수박 한 덩어리가 들어있었다. 혼자 사기엔 너무 크고 소량 구매는 어려운 제품들을 사기 위해 종종 참여하는 공동구매다.

주말이면 단톡방에 ‘집에 있는 사람끼리 장을 보러 가자’는 메시지가 뜬다. 입주자 3명 이상이 모여 함께 장을 보고 인증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지원금 2만 원을 받을 수 있어서다. 같이 택시를 타고 다녀오라는 운영사 측의 지원이다. 회사원 이원녕 씨(31)가 살고 있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공유하우스 ‘쉐어원@뉴튼역삼’의 일상이다.


● ‘따로 살면서 같이 사는’ 공유하우스

이 씨는 올 3월 강남구 삼성동 본사로 발령 나면서 급하게 집을 찾다 이곳을 발견했다. 마침 하나둘 늘어나는 공유하우스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였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이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주방과 거실, 화장실을 같이 써야 하지만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집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불편할 것 같지 않았다.

1일 본보 취재팀과 만난 그는 “원룸을 생각하면 전용면적 5.5평(약 18㎡)에 침실, 주방, 거실 등 모든 공간이 섞여있다. 여기선 3평짜리 개인 방이 있고, 그 외에 내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이 10평이 넘는다. 나만의 독립된 공간에 원룸보다 훨씬 쾌적하고 넓은 공유공간까지 누릴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 싶었다”고 했다. 임대료는 보증금 250만 원에 월세 55만~59만 원. 주변 원룸 시세 대비 70% 수준이다. 그를 포함해 20, 30대 8명이 함께 살고 있다.

‘함께 살고 빌려 쓰는’ 공유형 라이프 트렌드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여러 명이 거실 등을 함께 사용하는 공유하우스(서울 강남구 ‘쉐어원@뉴튼역삼’)는 젊은 층의 새로운 주거 형태로 각광받고 있다. 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면 이 씨는 공용주방에서 면 요리나 볶음밥을 만들어 먹는다. 냉장고, 테이블, 밥솥, 전자레인지, 토스터기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냉장고와 수납공간 내부는 서로 물건이 섞이지 않게 방 번호가 적힌 바구니로 분리돼있다. 그가 가장 즐겨 이용하는 공간은 거실이다. 퇴근 후 소파에 앉아 야식을 먹으면서 대형 TV로 축구경기를 보는 건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는 누리지 못했을 즐거움이다. 6월 어느 저녁에는 가벼운 파티도 열렸다. 운영사에서 맥주를 준비하고 입주자들이 하나씩 음식을 가져와 나눠먹었다.

“혼자 살면서 느끼는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공용공간에서 마주치면 서로 인사 나누고, 가끔 함께 어울리니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요.”

이 씨처럼 독립된 공간을 보장받으면서 일부 공간을 공유하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공유하우스는 물론 공유형 오피스텔, 임대아파트도 늘고 증가 추세다. 기존의 원룸형 구조에 라운지 등 공유공간을 갖추고 생활용품을 빌려주거나 공유차량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호텔처럼 조식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의 공유형 임대아파트 ‘지웰홈스 동대문’에 사는 대학원생 이모 씨(35·여)는 “혼자 살면 집이 좁아 친구나 가족들을 초대하기 어려운데 2층에 넓은 공용 라운지가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입주자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미리 신청하면 다리미, 청소기를 빌려 쓸 수 있다. 주말에는 같은 방식으로 공유차량도 이용할 수 있다.


● 서재, 주방도 빌려 쓰는 공유형 라이프

원하는 시간에만 빌릴 수 있는 공유 서재(서울 용산구 ‘후암서재’)와 공유 주방도 인기다. 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소유에서 공유로 바뀌는 라이프 트렌드는 주거에만 그치지 않는다. 서재나 별장, 주방을 빌려 주는 서비스도 속속 등장했다. 단순히 공간이나 사물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공유를 통해 여가 생활도 하고, 재미도 찾을 수 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후암서재’는 ‘집 앞에 있는 나만의 서재’라는 콘셉트로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 도시공감 협동조합 건축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공유경제 공간이다. 지난달 찾아간 후암서재는 26.4㎡ 규모로, 각종 서적이 꽂혀 있는 책장과 널찍한 테이블이 있었다. 의자는 3개. 한 번에 최대 3명까지 쓸 수 있다는 의미다. 1인당 1만5000원에 8시간 동안 쓸 수 있다. 누워서 책을 볼 수 있는 마루와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기계도 갖췄다.

지난달 이곳을 이용한 박모 씨(30·여)는 ”퇴근 후에 친구들과 우리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이용했는데 너무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준형 사무소 실장(33)은 ”공유서재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카페와 달리 온전히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지인들과 요리를 해먹는 공유주방도 인기다. 요리도구와 오븐, 가스버너 등이 갖춰진 공간 한 곳을 빌리는 방식이다. 만든 음식을 나눠먹을 테이블도 있다. 요금은 시간 당 2만 원 선이다. 서울 광진구 ‘진구네 식탁’, 마포구 망원동의 ‘마이키친’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초 마이키친에서 연인과 요리를 한 김모 씨(29·여)는 ”가격이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덕분에 재밌는 추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유경제 열풍에 유통업계도 앞 다퉈 뛰어들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2016년부터 드레스와 정장을 빌려주는 매장 ‘샬롱 드 샬롯’을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달 초 서울 지역 9개 매장의 주차장을 차량 공유업체에 제공했다. 유휴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고, 주차장을 이용하는 고객들을 마트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2019년까지 총 100개 매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 ‘소유’보다 ‘경험’ 중시하는 글로벌 트렌드 확산


해외에서는 공유형 라이프 스타일이 수년 전부터 발달해왔다. 특히 1인 가구가 보편화 된 일본에서는 이미 입주자들끼리 네트워크를 만드는 공유형 거주 형태가 유행이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간다 마이루 씨(32)는 도쿄 시나가와(品川)의 공유형 원룸에 살고 있다. 그는 매주 금요일만 되면 10여 명의 아침 식사를 책임진다. 얼마 전 친해지자는 취지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식사 계’를 만들어 공용 식당에서 아침과 저녁을 함께 먹고 있어서다. 하루 일과를 얘기하며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다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간다 씨는 ”친구보다 이곳 동료들과 더 많이 교류하고 있다. 혼자 살면서도 혼자 사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맞춤형 모델도 등장했다. 도쿄 주오(中央)구의 코리빙 ‘츠키시마소(月島莊)’는 직장인들 간의 ‘교류 레지던스’로 유명한 곳이다. 공공기업부터 부동산회사, 금융회사, 이벤트 기획사 등이 업체와 계약을 하고 20, 30대 미혼 직원들에 숙소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각자 방이 있고 부엌, 목욕탕, 세탁실 등은 함께 쓴다. 츠키시마소 관계자는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어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공유형 라이프 트렌드가 확산되는 배경에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의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이들은 초고가 아파트나 수입차를 직접 소유하기보다 렌트해서 살아보고, 운전해보는 경험이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인증’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학과)는 저서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집, 자동차, 해외여행 등 공간적 가치를 중시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의 가치관에서 공간의 중요도는 하위권으로 내려가고 있다. 그들의 우선순위는 스마트폰으로 영화, 음악, 컴퓨터게임 등을 즐기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불필요한 짐을 줄이는 합리적인 소비라는 측면도 있다. 이로 인해 공유형 라이프 트렌드는 더욱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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