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낚는 부동산 허위매물… 단속법안은 낮잠

강성휘기자

입력 2018-07-10 03:00 수정 2018-07-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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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1392곳 광고제한… 1년새 37%↑


분명히 6억3000만 원짜리 아파트였다. 막상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화하니 “그 집은 이미 팔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중개업자는 “대신 6억8000만 원이나 7억 원짜리 집을 보여주겠다”고 덧붙였다. 경기 용인시에 사는 최미영 씨(55·여)는 “이후로도 일주일 넘게 매일같이 6억3000만 원짜리 집이 있다고 인터넷에 광고를 올리더라. 혹시나 하고 전화할 때마다 ‘이미 팔린 매물’이라며 다른 집을 추천했다”고 했다. 부동산 중개업소의 허위매물이다.

9일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 따르면 부동산 중개업소의 허위매물 신고 건수가 올 들어 급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부동산 온라인 허위매물 신고 접수 건수는 4만4371건으로 지난해 하반기(7∼12월)의 2.5배에 달했다. 이 중 실제 허위매물로 판별돼 포털 등 부동산 광고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매물 광고 등록 제한 등의 조치를 내린 건수는 1807건이었다. 제재 건수는 지난해 상반기 1192건에서 하반기 1465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제재를 받은 중개업소도 지난해 상반기 1017곳에서 올해 상반기 1392곳으로 1년 만에 37% 늘었다. 이 중 서울 소재 중개업소가 받은 제재가 801건(중복 제재 포함)이며 서울 중에서도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가 272건(34%)으로 가장 많았다.

유형별로는 매물 가격을 실제보다 높거나 낮게 표시한 경우가 전체 신고 건수의 53.8%로 가장 많았다. 대학원생 심모 씨(28)는 최근 이 같은 허위매물에 속을 뻔했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에서 원룸을 구하던 심 씨는 월세 40만 원짜리 방이 있다는 광고를 보고 해당 중개업소를 찾았다. 하지만 계약 직전 중개업자로부터 “관리비가 30만 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 씨는 “사실상 월세가 70만 원이라는 소리였다. 속을 뻔했다”고 했다. 값이 실제보다 높은 경우 중 상당수는 입주자 카페나 아파트 부녀회가 가격 상승을 유도하기 위해 호가를 담합한 때문으로 보인다.

이미 거래가 끝난 매물 광고를 내리지 않거나 가구 옵션이나 인테리어 상황, 전용면적 등을 속이는 경우도 많았다. 중개인이 집주인인 것처럼 광고를 올린 뒤 계약을 체결할 때 중개 수수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선 중개업소들은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개업 공인중개사는 9만7038명이다. 중개법인 등을 합하면 전국적으로 10만2100개 중개업소가 영업 중이다. 하지만 절반 이상이 연매출 3600만 원 이하인 영세 사업자다. 경기 용인시의 B공인 관계자는 “중개업소 수는 늘어나는 반면 최근 거래량이 뚝 떨어지면서 허위광고라도 하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했다.

지역별로 공동중개망을 통해 매물 정보를 공유하는 시장 구조도 이 같은 허위매물 피해를 부추긴다. 한 부동산 중개 스타트업 대표는 “기존 업소들이 매물 정보를 공유하는 대신 중개 수수료를 통일하는 담합 구조를 갖고 있어 다른 서비스 경쟁력을 갖추려 하기보다는 광고에만 열을 올린다”고 지적했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허위매물을 올린 중개업소가 그에 대한 응당한 책임을 지게끔 현행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행법에는 허위매물을 올린 중개업소를 제재할 근거가 없어 부동산 플랫폼 운영사가 자체적으로 광고 제한 등의 조치를 내리는 것 이외에 다른 제재 수단이 없다.

국토부는 올해 초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과 함께 허위매물 등록 업소의 등록을 취소하는 등의 고강도 제재 방안 마련에 나섰지만 관련 법안(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시행이 늦어지고 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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