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은 입주폭탄, 불 꺼진 동탄… 5채 중 4채 빈집

천호성기자

입력 2018-01-11 03:00 수정 2018-01-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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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가보니

9일 밤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의 한 아파트 모습. 지난해 12월 중순 완공됐지만 5채 중 1채 정도만 입주해 불 꺼진 집이 많다. 화성=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동탄에서 제일 싼 고층 전세.’

9일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의 A아파트. 동마다 발코니 유리창 10여 곳에 이런 내용의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세입자를 못 구한 집주인들이 건물 외벽에 광고문을 붙이고 나선 것이다. 이 단지는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입주를 시작했지만 746채 중 620여 채는 여전히 ‘불 꺼진 아파트’다.

최근 아파트 완공이 한 번에 몰린 수도권 남부 신도시에서 멀쩡한 새 주택이 빈집으로 남는 ‘역(逆)전세난’이 심화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선 아파트 공급 부족으로 ‘미친 집값’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수도권 외곽 신도시에선 공급 과다로 ‘내 집 마련이 아니라 빈집 마련’이란 자조가 쏟아진다. 전·현 정권의 정책 실패가 불러온 동전의 양면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입주 폭탄’에 불 꺼진 동탄 아파트

10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 지역에서 입주한 아파트는 12만8452채다. 전년(8만7670채)보다 46.5% 늘었다. 동탄2신도시가 있는 화성시(2만3262채)를 비롯해 김포(1만1535채) 평택(7714채) 용인시(6793채) 등의 입주 물량이 특히 많았다. 정부가 금융 규제의 문턱을 낮추면서 ‘빚내서 집 사라’는 신호를 보냈던 2015, 2016년에 분양된 단지들이 줄지어 완공됐기 때문이다.

동탄2신도시 남부지역 등의 일부 아파트는 완공 후 한 달이 되도록 입주율이 20%를 밑돌고 있다. 위례신도시 등에선 초기 한 달 입주율이 50% 안팎이었다. 동탄면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4일 입주를 시작한 A아파트(746채)는 5일 현재 입주율이 17%였다. 분양가(평균 2억3500만 원)를 감안하면 1455억 원이 불용자산으로 남은 것이다. 같은 해 12월 말 입주를 시작한 인근B 아파트(689채) 역시 일주일 동안 7채만 집들이를 했다.

지난해 12월 이 지역 아파트에 들어온 김현경 씨(28·여)는 “한 라인에 50채가 있는데 사람이 들어와 사는 집은 10채도 안 된다. 밤에 엘리베이터 타기가 무섭다”고 했다.

빈집들은 대부분 전·월세 매물로 세입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이후 입주한 단지마다 절반 이상의 주택이 임대로 나와 있다.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를 찾는 문의가 하루 서너 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주거 인프라가 갖춰지기 전에 아파트부터 대거 들어서다 보니 생활 환경이 안 좋은 것도 문제다. 동탄면 H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전세금이 싸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혼부부 손님이 찾아왔다가 주변에 소아과나 신생아 응급실이 없다며 돌아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 올해도 대규모 분양 대기

세입자를 구하지도, 집을 처분하지도 못하는 집주인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분양 당시 상당수 집주인이 실제 거주가 아닌 투자 목적으로 청약했지만 매매 차익은커녕 전세금과 매매가가 모두 하락세이기 때문이다.

동탄의 B아파트는 지난해 초까지 전용면적 93m² 분양권에 최고 1500만 원의 웃돈이 붙었지만 이달 들어 분양가보다 2500만 원 싼 ‘마이너스 프리미엄’ 매물이 나오고 있다. 주인 김모 씨(54·여)는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분양가 잔금을 치르지 못할 상황”이라며 “웃돈 없이 팔거나 직접 입주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오산 평택 화성시 등 경기 서해안권 아파트의 주간 매매가 변동률은 지난해 11월 둘째 주 이후 8주 연속 보합·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세도 7주 연속 떨어졌다.

역전세난은 연말로 갈수록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경기도 입주물량은 지난해보다 26% 늘어난 16만1992채다. 지금도 공급 과잉에 시달리는 화성과 용인에서만 4만7000여 채가 완공된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전국에서 분기마다 10만 채 이상의 주택이 완공되는 ‘입주 랠리’가 내년 1분기(1∼3월)까지 예정돼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건설사들은 추가 분양을 준비 중이다. 기존에 확보한 택지를 계속 떠안고 있으면 금융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전국에서 분양하는 아파트는 약 42만 채다. 지난해(26만 채)보다 62% 많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신축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들이 단지별 분양 시기가 분산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동탄=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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