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차려 상품 기획… 본사 정직원, 카페 알바생 대학 접고… 최연소 점장

정민지기자

입력 2017-12-11 03:00 수정 2017-12-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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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길로 취업문 연 청년들

취업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편의점을 운영해 본사 정규직으로 특별 채용된 이제훈 씨(왼쪽 사진)와 대학 졸업장 대신 바리스타의 길을 택해 최연소 점장이 된 가도희 스타벅스코리아 주얼리시티점 점장.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스타벅스코리아 제공
“제가 취업에 성공한 것은 지난 5년간의 무수한 실패 덕분입니다.”

대학 졸업 후 인천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던 이제훈 씨(32)는 학원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28세에 첫 직장을 잃었다.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전자기기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1년 반 동안 서너 달에 한 번꼴로 대금을 떼이면서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해보자’는 심정으로 편의점을 시작했는데, 여기서 인생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현장 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편의점도 운영하면서 본사 정규직 직원이 된 것이다.

기업들이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갈수록 선호하고, 학력이나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 바람까지 확산되면서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청년들의 취업문이 넓어지고 있다.

이 씨가 그런 사례였다. 이미 사업에 실패해 절박한 심정이었던 이 씨는 편의점 운영도 녹록지 않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새벽이나 심야엔 특히 장사가 안 됐다. 이 씨는 이때 틈틈이 영화나 드라마를 봤다.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드라마 ‘도깨비’가 한창 인기일 때 ‘녹깨비’ 패키지 상품을 구성했어요. 녹차 사탕, 녹차 초콜릿, 녹차 음료 같은 걸 묶어서 파는 거죠.” 매출도 ‘반짝 효과’를 봤다. 반응이 신통찮은 것들도 있었지만 소위 ‘먹히는’ 판매 전략을 조금씩 알게 됐다.

그의 경영 능력을 눈여겨본 편의점 본사는 올해 5월 그를 정직원으로 특별채용했다. 신세계그룹 계열사 ‘이마트24’에서 우수 가맹점주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전형이 마침 처음 실시된 덕분이었다. 그는 갓 영업을 시작한 편의점 운영주들을 대상으로 같은 눈높이에서 조언하고 교육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이 씨는 “들쭉날쭉한 편의점 매출에 늘 고민해 왔는데 고정임금을 받게 돼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며 웃었다. 이어 “시행착오를 하지않으려고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주변에서 볼 때마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씨에게 절박함이 힘이었다면 아르바이트로 일하다 정직원으로 취업한 가도희 씨(23)는 대학 졸업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일찌감치 뛰어들어 성공했다. 서울 종로구 스타벅스 주얼리시티점 운영을 총괄하는 가 씨는 역대 스타벅스코리아 점장 가운데 가장 어리다.

가 씨는 대학에 입학한 2012년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커피가 좋았고, 손님 대하는 것도 즐거웠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하면 안정된 일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1학년 2학기에 학업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학교 가는 것보다 일하러 매장 나가는 게 더 신이 났다. 담당 교수, 친구들, 부모님까지 말렸지만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는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가 씨가 채용되고 점장까지 오르게 된 것은 스타벅스코리아의 열린 채용이 있어 가능했다. 가 씨는 “대학 졸업장을 포기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주변 시선과 편견을 의식하지 않았더니 예상치 못했던 ‘좋은 일자리’를 얻는 기회가 생기더라”고 말했다.

학벌보다는 실무 경험을 중시하는 채용 문화는 점점 많은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어 주목된다. 롯데는 올해 하반기 공채부터 블라인드 채용 방식인 ‘스펙태클 채용’을 한층 더 강화했다. 서류를 접수받을 때 지원하는 부서 직무와 관련된 기획서 또는 제안서만 제출하도록 했다. CJ그룹은 올해 하반기 공채 때 출신 학교, 학점 등을 입사지원서에 기재하지 않는 ‘리스펙트 전형’을 도입했다. 하반기 채용 인원 550여 명 중 20%가 이 전형을 통해 정규직으로 뽑혔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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