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줄 알면서도…목숨걸고 ‘대화퇴 어장’ 조업 나선 어선들, 왜?

속초=이인모 기자 , 포항=장영훈 기자 , 부산=강성명 기자

입력 2019-08-16 19:02 수정 2019-08-16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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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해역에서 조업하다 기상 악화로 경북 울릉군 울릉읍 죽도 앞바다에 긴급 대피 중인 중국 어선들. 북한 당국으로부터 조업권을 구매한 중국 어선들이 대화퇴 어장 등 동해에서 쌍끌이 저인망으로 물고기를 쓸어 담고 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11월 3일 오후 6시경 울릉도에서 북동쪽으로 약 333㎞ 떨어진 해역. 홍게를 잡던 한 통발어선에 북한군 고무보트가 다가왔다. 어선은 전날 오후 3시경 경북 울진군 후포항에서 출항했다. 북한군 7, 8명은 배에 오른 뒤 “누가 여기서 작업하라고 했느냐”며 위협했고 어선을 끌고 2시간가량 북한 해역으로 넘어갔다. 이후 다른 북한 경비정이 다가와 북한군 1명이 승선하더니 “남북이 화해 관계이니 돌아가라”고 전한 뒤 어선을 풀어줬다. 조사 결과 어선은 한국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있었지만 북한 해역과 가까워 한국 해역에 불법 침입한 북한군에게 나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 “복어 더 잡으려다가…” 북한 해역까지


통발어선이 홍게를 잡던 곳은 한일 공동규제수역과 일본의 EEZ에 걸쳐 있는 대화퇴(大和堆) 어장이다. 오징어와 홍게, 복어 등 연간 최대 2만5000t의 물고기가 잡혀 ‘황금어장’으로 불린다. 넓이는 106만 ㎢ 정도다. 통발어선은 북한군이 쉽게 다가올 정도로 북한 해역과 가까웠지만 만선을 기대한 선장이 어장을 쉽사리 벗어날 수는 없었다.

대화퇴 어장은 독도에서 북동쪽으로 약 340㎞, 일본 이시카와(石川)현에서 서쪽으로 약 300~400㎞ 떨어져 있다. 속초 삼척 포항 등 동해 주요 항구에서 거리는 500~650㎞ 정도다. 어선을 타면 족히 20시간 이상 걸린다. 어선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 기름값만 100만 원이 훌쩍 넘기도 한다. 하지만 어획량이 많아 대화퇴 조업은 유류비와 인건비, 식비 등 각종 출어 경비를 빼고도 선주는 상당한 목돈을 쥘 수 있는 ‘남는 장사’였다. 한 번 조업을 나가면 오징어 2만 마리 이상을 잡기도 했다. 일본 어선들도 6~10월 오징어와 게를 잡기 위해 이곳에 집중적으로 들어왔다.

대화퇴 어장은 북한, 러시아 해역과도 가까워 지나친 어획 욕심으로 EEZ를 침범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올 2월 17일 대화퇴에서 조업 중이던 후포항 선적 동진호가 EEZ 침범 혐의로 러시아 당국에 나포됐다. 동진호는 대화퇴에서 조업 중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가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10월에는 경주 감포 선적의 흥진호가 조업 중 북한에 나포됐다. 흥진호가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 해역을 침범한 이유는 바로 복어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복어가 1마리밖에 잡히지 않자 어군이 많은 북한 해역에 들어가 조업을 하다가 북한 경비정에 나포된 것. 흥진호는 일주일 만에 풀려났다.

● ‘황금어장’에서 목숨 건 조업

대회퇴는 최근 큰 변화를 맞았다. 어장을 가득 메웠던 한일 어선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북한과 중국 어선들이 점령하기 시작했다. 한때 성어기면 수백 척이 출어에 나섰던 한국 어선들은 현재 소형 어선이나 러시아 수역을 오가는 어선들이 들렀다 가는 정도에 불과하다. 북한과 중국 어선들이 어린 물고기까지 싹쓸이하면서 어획량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경북 포항에서 오징어채낚기 어선을 운영하는 한 선주는 “과거 대화퇴에서 잡히는 오징어는 최고의 상품성을 갖춰 어민들이 많이 가는 바다였다. 하지만 현재 대화퇴를 포함한 동해는 중국 어선들이 저인망으로 어족 자원의 씨를 말리고 있다. 효율을 따졌을 때 지금은 갈만한 곳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반면 북한과 중국 어선들에 대화퇴는 아직도 매력적인 어장이다.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가을철에는 북한과 중국 어선 1000~2000척이 몰려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어선들은 수산물 증산 정책에 따라 먼바다까지 나가 조업해야 하고 중국 어선들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조업권을 구매해 쌍끌이 저인망으로 물고기를 쓸어 담고 있다. 동해지방해양경찰청에 따르면 동해상에서 북-러 수역으로 조업차 이동하는 중국 어선은 2016년 1268척에서 2017년 1711척, 지난해 2161척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14일까지 1346척이 이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12월에는 한국 해역에서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 2척을 해경이 나포하기도 했다. 동해안에서 해경이 중국 어선을 나포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들 어선에는 오징어 45t이 실려 있었다.

중국 어선과 달리 북한 어선은 대부분이 길이 10m 안팎의 목선인 데다 엔진 등 장비도 노후해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중국 어선들의 남획으로 연근해 수산자원이 고갈되자 낡은 배로도 먼바다까지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먼 일본 수역의 대화퇴 어장까지 진출하며 일본과의 충돌도 빈번하다. 일본 해상보안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EEZ 내 대화퇴에서 조업하다가 적발돼 퇴거 경고를 받은 북한 어선이 1624척, 이중 퇴거 경고를 따르지 않은 513척에게 일본 순시선은 물대포를 쐈다.

● 씨 마른 오징어 “아, 옛날이여”

최근 수년 동안 중국과 북한 어선들이 어린 물고기까지 씨를 말리면서 대화퇴뿐 아니라 동해의 어획량이 감소했다. 한때 전국 생산량의 60%를 대화퇴에서 차지했던 오징어의 사정은 특히 심각하다. 대화퇴만의 어획량이 별도로 집계되지 않지만 전체 어획량을 감안하면 심각성은 뚜렷하다. 강원도환동해본부에 따르면 강원도내 어선들의 오징어 어획 실적은 약 40년 만에 10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1970년 4만3066t에서 계속 줄다가 2005년 3만15t으로 반등한 뒤 매년 내리막길이다. 급기야 2014년 9461t으로 처음으로 1만 t 이하로 떨어졌고 2017년 4191t, 지난해 2688t에 머물렀다.

이러다 보니 예전 대화퇴까지 조업에 나섰던 강원과 경북 어선들은 이제 러시아 수역으로 몰리고 있다. 러시아 조업의 인기를 반영하듯 한-러 어업위원회에서 결정하는 한국 원양어선들이 러시아 EEZ에서 잡을 수 있는 어획 할당량은 매년 늘고 있다. 올해 확정된 어획 할당량은 전년보다 2420t 늘어난 4만2470t으로 이 가운데 오징어가 지난해 3500t에서 5000t으로 가장 많이 늘었다.

대화퇴어장을 공유하는 한일 양국은 종종 마찰을 빚는다. 지난해 11월에는 일본 어선의 조업을 놓고 양국 해경이 대치하기도 했다. 한국 해경 경비함이 대화퇴 어장 근처에서 조업하는 일본 어선에 “다른 수역으로 가라”고 요구하자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일본 어선이 조업할 수 있는 해역이라 이동하라는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한 것. 뒤이어 일본 순시선 2척이 한국 경비함과 일본 어선 사이로 이동하면서 양국 배는 약 740m 거리를 두고 2시간가량 대치했다.

한일 대화퇴 갈등의 대표적 사건은 2005년 5월 31일 발생한 통발어선 502신풍호 대치 사건이다. 신풍호가 한국 수역 대화퇴를 넘어 일본 EEZ 내 3마일(약 4.8km)까지 진입하자 일본 순시선이 나포를 시도했고 선원 1명을 다치게 했다. 신풍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한국 해경 경비정이 신풍호 좌측에 계류하자 일본 순시선도 신풍호 우측에 계류하면서 신풍호를 사이에 두고 33시간 대치했다. 대화퇴에서 조업하던 양국의 배가 충돌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15일 통영 선적 문창호(48t)와 일본 국적 세이토쿠마루호(164t)가 충돌해 문창호의 기관실이 침수됐고 승선원 13명은 인근에 있던 한국 어선에 의해 구조됐다.


‘황금어장’ 대하퇴 어장이 매력적인 이유는?



대화퇴는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인근 해역의 어류 서식지다. 동해의 평균 수심은 1400m 정도인데 대화퇴 어장은 평균 수심이 300~500m로 얕다. 남하하는 리만 한류와 북상하는 구로시오 난류가 만나 풍부한 어장을 형성한다. 난류와 한류가 뒤섞이면서 심층수와 표층수의 물리·화학적 변화가 다른 해역보다 활발해 플랑크톤이 많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오징어 꽁치 방어 연어 송어 돌돔 벵에돔 개볼락 전복 소라 해삼 문어 등이 두루 잡힌다. 특히 오징어는 한때 국내 어선 전체 어획량의 60%를 넘긴 적도 있다. 대서양 북서부 어장, 대서양 북동부 어장과 함께 세계 3대 어장으로 꼽히는 태평양 북서부 어장의 핵심 수역이다. 대화퇴 어장에 많이 다녀온 한 어민은 “깊은 바다와 산등성이가 어우러져 다양한 어류들이 잡혔던 곳이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어선들의 경쟁이 치열했다”고 회고했다.

1926년 일본이 1500t급 해군 초계함 야마토(大和)함으로 한반도 주변 해역에 대해 대대적인 측량 조사를 하면서 그 존재가 확인됐다. 일본은 선박 이름 뒤에 ‘심해에 솟은 언덕’이라는 뜻을 더해 ‘야마토타이(大和堆·야마토 언덕)’로 이름 붙였고 한국은 한자어대로 대화퇴라고 부르고 있다.

대화퇴의 중앙부는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깊이 2000m에 이르는 계곡을 기준으로 나뉘어 있다. 일본에 가까운 쪽을 ‘대화퇴’, 반대쪽은 ‘북대화퇴’라고 부른다. 이 중 대화퇴는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포함되지만 전체 면적의 약 45%에 해당하는 북대화퇴는 1998년 체결된 신한일어업협정에 따라 한일 양국이 함께 조업할 수 있는 공동수역이 됐다. 당시 중간 수역의 동쪽 한계선을 놓고 한국은 동경 136도, 일본은 134도를 주장하며 막판까지 충돌하다 결국 동쪽 한계선을 135도 30분으로 하자는 데 합의했다.

대화퇴는 한때 ‘통곡의 바다’로 불린 적이 있다. 1976년 10월 28일 오후 3시경부터 약 46시간 동안 불어 닥친 폭풍우는 한국 어민 317명을 한꺼번에 집어삼켰다. 당시 대화퇴 어장에선 오징어잡이에 나선 어선 448척이 조업 중이었다. 초속 14~17m의 강풍과 높이 10m가 넘는 삼각파도에 20t 미만의 소형 어선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안타깝게도 가장 가까운 대피처인 울릉도에선 30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국내 최악의 해난 사고 중 하나로 꼽힌다.


속초=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포항=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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