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벗어난 주변 풍경, 김신욱 사진전 ‘공항 도시’

뉴시스

입력 2019-04-24 09:37 수정 2019-04-2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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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승무원이었다면 전 세계 공항 주변을 촬영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승무원을 만나 인터뷰를 해보니 그들은 대부분 공항 주변에 관심도 없었다. 공항 주변에 뭐가 있고 어떤 모습인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항 주변에 관한 어떤 생각이나 기억도 가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공항 주변은 존재하지만 의식되지 않는 공간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 감정 상태 또는 장소와의 관계는 마치 말끔한 호텔 옷장에 걸린 한 벌의 유니폼처럼 가볍고 일시적인 것이 아닐까?”

김신욱(37) 사진전 ‘공항 도시’가 24일 서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대학 수펙스 경영관 카이스트 리서치&아트 갤러리에서 개막한다.

사진가 김신욱은 영국 런던에 살면서 2010년부터 3000번 이상 히스로 공항을 오갔다. 누군가를 픽업하고 이동시키는 자신의 업무로 인해서다. 그러면서 공항 주변의 삶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2013년부터 ‘언네임드 랜드: 에어포트 시티‘로 연작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14~2016년 히스로 공항과 인천 등지에서 작업한 초기작과 최근 인천공항 주변에서 촬영한 신작을 보여준다.

공항이라는 곳은 먼 곳으로의 이동을 위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공적 장소다.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 그리고 국경으로부터의 개인들이 뒤섞이며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발달된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두 개념, 속도와 이동을 함께 떠오르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선으로 경계 지어진 공항을 벗어난 주변 지역은 매우 일상적인 장소다. ‘속도와 이동’을 대신해 ‘느림과 정착’ 또는 ‘비움’이라는 키워드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가 관찰하고 바라본 그 ‘주변’ 지역은 공항이라는 장소가 갖는 여려 함의들을 들춰내고 궁극적으로는 확장과 개발 그리고 중심과 주변의 이분화라는 현대사회와 초고층화된 도시문화의 민낯을 대면하게 한다.

연작에 담겨진 히스로 공항 주변의 풍광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함과 정적을 간직한다. 아마도 발전과 개발이 ‘멈춘 듯한 느낌’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만하게 이들은 덜 현대적인 풍광으로 보인다.

도시의 건물과 게시판에 붙어 있는 공항 확장 반대 포스터, 건물 사이로 보이는 갓 이륙한 비행기 동체의 모습, 중심이 아닌 주변에 거주하는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인종의 작은 행사와 결혼식 풍경 등, 사진들에선 공항은 등장하지 않거나 비행기가 저 멀리 보인다. 그의 사진 속 주인공인 공항은 지역의 건물과 인물 뒤의 사소한 배경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이렇게 중심으로 옮겨진 주인공들은 그럼에도 왜인지 공허하고 쓸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이유는 작가의 시선에 기인한다. 공항 주변의 풍경과 인물들을 연출 없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건조하고 담담하게 드러내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한 명의 이방인으로서 공항과 도시 중심을 오가며 느꼈을 감정과 생각들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보여주는 주변 지역의 모습이야말로 공항이라는 장소와 그 장소 이면에 숨겨진 현대성의 의미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회적으로 전달되는 현대사회의 모습은 어쩌면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신작 중 인천공항의 사진들은 인물과 오브제들을 의도적으로 최대한 배제시켰다. 히스로 공항의 사진들에서보다 주변성, 공항과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특성들을 더 강조하고 있다. 김신욱의 사진은 역동적인 거대한 장소를 선택하고 그 주변을 의도적으로 살펴 중심과 주변의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사회의 대립적인 가치의 공존, 이분화된 구도 등 많은 문제들을 돌아보게 하기 위함이다.
오형근 계원예술대학교 아트플레이군 사진예술 교수는 김신욱의 작업을 주인공 없는 영화라고 표현한다. “공항 담장 넘어 덩그러니 남아 있는 집 한 채, 그리고 그 뒤로 날아가는 비행기 혹은 공항 근처 공터에서 엉뚱하게 웨딩 영상을 찍고 있는 커플 등, 김신욱은 끊임없이 공항의 외곽을 배회하며 주변의 낯선 풍경들과 그 안에서 부유하는 인물들의 어정쩡한 모습들을 담아낸다. 때문에 수많은 조연들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사건들이 펼쳐지지만 정작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극적인 전개가 없는 지루한 영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지루한 주변부의 모습들이 아주 흥미롭게 읽혀진다. 공항이 가지고 있는 장소성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라고 평한다.

김 작가는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순수예술학부를 졸업한 뒤 영국 왕립예술학교에서 사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언네임드 랜드: 에어포트 시티’(서울스페이스22, 2018), ‘슬립워커’(런던 주영한국문화원, 2015), ‘어해도’(런던 목스페이스, 2012) 등의 개인전과 ‘포스트모던: 쇼트 스토리스’(이탈리아 밀라노 더 몰, 2019) 등 단체전에 참가했다. 제10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2018년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전, 2018 툴루즈 마니페스토 이미지 페스티벌에서 수상해 프랑스 툴루즈 생 피에르에서 전시했다. 2012년 제14회 사진비평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개막일인 25일 낮 12시 작가와의 대화가 열린다. 전시는 6월21일까지.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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