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쿤스 또 표절…유죄 판결 받아

손택균기자

입력 2018-11-09 11:57 수정 2018-11-09 12:01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의류업체 광고사진 도용…“1억9000만 원 배상하라”
광고, 잡지, 만화 표절로 잇따른 소송…지난해에도 패소
쿤스 “예술적 패러디” 주장에 법원 “명백히 유사하다” 지적


미국의 유명 미술 작가 제프 쿤스가 1988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회고전에서 공개한 조각 ‘페 디베(Fait d‘Hiver)’. 출처 artlyst.com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로 잘 알려진 미국 미술 작가 제프 쿤스(63)가 ‘프랑스 의류업체의 광고 이미지를 작품에 무단 도용했다’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 법원은 8일 “문제의 작품을 제작한 쿤스와 전시 공간을 제공한 퐁피두센터가 광고제작자 프랑크 다비도비치의 작품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그 대가로 17만 달러(약 1억9100만 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비도비치는 1985년 ‘멍한 표정으로 눈밭에 드러누워 허공을 바라보는 한 여성과 그 여성의 검은 단발머리에 코를 대고 킁킁대는 돼지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을 의류업체 나프나프의 광고에 사용하며 ‘페 디베(Fait d’Hiver·겨울의 사실)‘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그로부터 3년 뒤 쿤스는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자신의 대규모 회고전 ’버날리티(Banality·따분함)‘에 ’페 디베‘라는 제목의 조각 작품을 내놓았다. 이 조각은 다비도비치의 광고 사진과 거의 똑같이 눈밭에 누운 여성과 그 여성의 짧은 흑발 쪽으로 다가가는 돼지의 모습을 표현했다. 여성의 이마에 선글라스를 씌우고, 돼지 목에 화환을 걸고, 돼지 옆에 펭귄을 세운 것 정도가 다비도비치 사진과의 차이점이다.

다비도비치는 “2014년 가을 퐁피두센터의 전시 화보집을 보다가 쿤스 조각품의 사진을 처음 접했다”며 다음해 1월 소송을 제기했다. 쿤스 측은 “작가의 예술적 패러디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며 “이 작품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는데 다비도비치가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소송을 낸 것도 의아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광고제작자 프랑크 다비도비치가 1985년 의류업체 나프나프의 광고에 사용한 흑백사진 ‘페 디베(Fait d‘Hiver)’. 출처 artlyst.com


법원은 “여성의 머리카락이 왼쪽 뺨 위에 흩어져 있는 모습, 여성의 표정 등에서 쿤스의 조각은 다비도비치의 사진과 매우 확연하게 유사한 상황 설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시했다. NYT는 “그러나 17만 달러는 쿤스의 이 조각 작품이 2007년 경매에서 프라다 재단에 팔린 금액인 400만 달러(약 45억 원)에 비해 매우 미미한 배상금”이라고 전했다.

쿤스가 표절로 소송을 당해 패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8년 전시 작품 중 상당수가 상업광고와 잡지에 쓰인 이미지를 임의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뉴욕 소나벤드 갤러리에서 같은 전시를 연 직후에는 사진작가 아트 로저스가 “쿤스가 자신의 조각 ’스트링스 오프 퍼피스‘에 남녀 한 쌍이 셰퍼드 강아지들을 안고 있는 모습을 담은 내 사진을 도용했다”며 소송을 냈다. 쿤스는 인기 만화 ’가필드‘에 등장하는 강아지 캐릭터 ’오디‘를 허가 없이 사용해 제작사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에도 파리 법원은 쿤스가 2014년 퐁피두센터 전시에서 선보인 조각 ’네이키드(Naked)‘가 꽃을 든 나체 어린이들을 촬영한 프랑스 작가의 사진 이미지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쿤스가 소속된 가고시안 갤러리는 이번 판결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쿤스는 2010년 막대풍선으로 만든 개 모양의 30달러짜리 책 버팀대를 만들어 판매한 업체들에 “내 대표작 ’풍선 개‘와 흡사한 상품을 만들지 마라”는 경고 서신을 보냈다가 “세상 모든 풍선 개의 저작권을 쿤스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거냐”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쿤스가 만든 3m 높이의 오렌지색 조각 ’풍선 개‘는 2013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5840만 달러(약 650억 원)에 팔려 생존 작가 작품 경매가 역대 최고액 기록을 세웠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