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베토벤 전곡 완주…이정란의 쉼표 없는 도전

양형모 기자

입력 2018-01-12 05:45 수정 2018-01-12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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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선언 후 거침없는 도전과 실험의 행보로 주목받고 있는 첼리스트 이정란. 10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콘서트에서는 베토벤의 첼로 작품 전곡 연주의 마침표를 찍었다. 사진제공|MOC프로덕션

■ 첼리스트 이정란

2015년 바흐 무반주 첼로 이어 또 전곡 연주
베토벤의 일기 직접 읽어주며 느낌 전하기도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작곡가의 모든 곡을 연주하려면 그 사람의 인생을 통틀어 알아야 합니다.”

첼리스트 이정란(35)씨를 보고 있으면 ‘도대체 저 열정과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서울대 재학 중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합격했고, 졸업하자마자 귀국해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부수석이 되었죠.

당시 명장 정명훈이 이끌던 서울시향은 뭇 클래식 연주자들이 희망하는 꿈의 직장이자 자리였지만 이정란씨는 2014년 훌훌 털고 나와 솔로 독립을 합니다.

이후 이정란씨의 행보는 도전과 실험의 연속이었죠. 오케스트라의 굴레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접고 있던 날개를 보란 듯이 활짝 펼쳐 보였습니다.

대표적인 도전은 전곡 연주 시리즈입니다. 클래식 연주자에게 한 작곡가의 작품 전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등반가의 히말라야 등정과 다를 게 없습니다. 2015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연주하며 ‘이정란표 전곡 시리즈’의 문을 열었고, 이어 베토벤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연주곡 전곡’을 완주했습니다.

베토벤 시리즈는 두 번으로 나누어 진행했는데요, 지난해 7월에 한 차례 연주했고 해를 넘겨 10일에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정란 첼로 리사이틀 모습.

10일 연주회에서 이정란씨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세 곡을 연주했습니다. 두 개의 악장으로 된 2번과 4번을 1부에서, 그리고 인터미션 후 2부에서는 세 악장으로 완성된 3번을 들려주었죠. 앙코르곡이었던 멘델스존의 무언가까지 연주하고 나니 훌쩍 두 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이정란씨의 연주가 깊어져 있어 조금 놀랐습니다. 프랑스 유학파답게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자주 연주하곤 했는데, 베토벤이어서일까요. 확실히 소리의 표정이 달랐습니다. 듣는 이의 마음 속 깊은, 심연의 한 부분을 자꾸 건드립니다. 꼭꼭 감추어둔 그곳을 스윽 쓰다듬고 가는데 묘하게 위안을 줍니다.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함께 울어주는 기분이랄지요.

이정란씨는 “베토벤이 남긴 서신과 일기장을 읽고난 뒤 그의 음악을 다시 접했을 때 훨씬 진솔하고 아름다웠다. 그 느낌을 꼭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이정란씨는 태블릿PC를 들고 무대로 걸어 나와 베토벤의 일기 몇 부분을 조근조근 관객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이정란씨의 첼로와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 유영욱(41·연세대 음대) 교수는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다운 멋진 베토벤을 들려주었습니다. 20대의 베토벤도 50대처럼 연주해버리는 허다한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모처럼 제 나이대의 베토벤을 만날 수 있었거든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날 연주회의 앙코르곡은 일종의 티저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이정란씨의 다음 전곡 연주 시리즈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멘델스존이라고 하니까요.

새해에도 이정란씨의 도전과 실험을 응원합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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