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절인 채소의 왕, 김치

동아일보

입력 2017-12-11 03:00 수정 2017-12-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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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는 콜리플라워, 브로콜리, 방울양배추 등이 속해 있는 겨자과(십자화과) 식물로 원산지는 유럽이다. 한국에서 김치를 담그는 배추 역시도 차이니스 배추라 해서 양배추의 가족으로 케일과 청경채 등이 친척이다. 수 세기 동안 세계인의 식생활에 큰 영향을 준 중요한 식재료 중 하나지만 다른 야채에 비해 저렴한 까닭에 중요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양배추는 ‘먹는 위장약’으로 불리며 비타민U가 풍부하다. 오죽하면 영어 ‘캐비지’와 비슷하게 이름 지어진 위장약이 있을 정도다. 오렌지보다도 비타민C가 더 풍부할 뿐만 아니라 보라색 양배추에는 항산화 물질도 풍부하다. 양배추는 돼지와 더불어 수 세기 동안 북유럽 지방의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 식재료였다. 독일의 족발요리인 아이스바인은 로스트하거나 삶은 돼지다리와 양배추를 함께 먹고, 폴란드의 비고스는 돼지고기와 소시지, 양배추를 곁들인 찜요리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슈크루트 가르니는 로스트한 돼지고기와 다리를 삶아 부드럽게 한 후 소시지와 함께 감자, 당근 등의 뿌리야채, 사워크라우트라는 양배추 피클을 곁들인다. 사워크라우트는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후 잘게 채 썬 양배추로 냉장고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많은 사람을 구한 소중한 음식이었다. 특히 겨울철 항해 중 비타민C의 중요 공급원으로 괴혈병으로 인한 사망을 막아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식품이다.

1519년 마젤란이 이끄는 신대륙 탐험에 참여한 이탈리아인 항해사인 안토니오가 원주민과의 전투가 아닌 괴혈병에 의한 사망이 반 이상이었다’라고 서술하였을 정도이니 얼마나 참혹했을까 싶다.

중국의 쏸차이(酸菜)는 사워크라우트와 가장 근접한 저장 야채로 알려져 있다. 채를 친 양배추에 소금을 뿌려 용기에 담아 무거운 것으로 누른 뒤 18∼20도의 어두운 곳에 둔다. 2∼6주가 지나면 숙성돼 맛이 좋아지는데 쉽게 만들 수 있다. 사워크라우트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피클은 하룻밤 정도 잠깐 절여 만든 스타일로 일본인들의 입맛에 잘 맞는다. 하지만 발효나 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은 까닭에 깊은 맛이 없고, 금방 맛이 변하는 단점이 있다. 한국에 살면서 가장 놀란 것은 김장이다. 마치 명철처럼 가족 단위로 만나 대대로 이어온 레시피를 가르치고 물려받는 것도 부럽지만, 분가 후 흩어져 살면서도 같은 김치를 먹으며 공감을 형성하는 끈끈한 연대감에 부러움을 느꼈다.

김치를 많이 먹지 않는 우리 집도 처가에서 만들어 오는 김치와 솜씨 좋은 사돈 조카가 신경 써서 만들어 보내주는 김치가 도착하면 손으로 죽죽 찢어 통깨를 뿌린 다음 따뜻한 흰밥에 올려 먹는다. 그리고 굴과 함께 돼지고기 보쌈을 먹으면서부터 겨울에 접어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 김치찌개나 신 김치를 씻어 볶은 반찬이 등장하면 김장김치가 떨어져 가는구나 생각할 만큼 김치로 계절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일본은 업계에서 만들어낸 것들로 인해 요즘에는 가정에서 거의 야채절임을 만들지 않는다. 한국의 김장 문화는 세계적 유산으로 영원히 보존되어야 하며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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