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소매업 고용-근로시간 동시 감소… 자영업자 이중고 드러나

유성열 기자 , 박은서 기자

입력 2019-05-22 03:00 수정 2019-05-22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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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으로 고용감소 확인]정부, 첫 최저임금 실태 조사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충격’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면서 현 정부 들어 격화된 ‘최저임금 논쟁’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정부는 그동안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에 미치는 명확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인 효과가 90%”라고 말했고,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고 있었던 장하성 주중 대사는 같은 달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는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조사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줄었다는 사실이 일부 업종에서 확인됐다. 그간의 정부 주장을 뒤집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 심층면접조사로 확인된 ‘고용 충격’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9월 취임과 동시에 최저임금 인상 실태를 면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2년간(2018∼2019년) 29.1%나 오른 최저임금(올해 시급 8350원)으로 일자리가 실제로 줄었는지를 두고 사회적 갈등이 커지자 정확한 ‘팩트’를 확인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고용부의 용역을 받은 노용진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5개월여간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중소 제조업 △자동차 부품 제조업 등 4개 업종 사업장 94곳을 상대로 집단심층면접(FGI) 조사를 벌였다.

FGI는 같은 특성을 지닌 소수의 대상자를 한 장소에 모아놓고 좌담 형식으로 의견을 듣는 조사 방법이다.

노 교수가 21일 발표한 FGI 조사 결과는 지금까지의 우려를 그대로 담고 있다. 저임금 근로자가 많은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은 최저임금 인상 탓에 실제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또 사업주들이 영업시간을 줄이거나 가족 고용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하면서 최저임금이 올랐어도 실제 근로자들의 소득은 기대만큼 늘지 않았다.

특히 노 교수는 “도소매업은 고용 감소와 근로시간 감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기업이 상당수 존재했다”고 밝혔다. 도소매업은 대부분 영세한 탓에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자 사람을 줄이고, 근로시간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자영업자들의 이중고는 여러 차례 지적됐지만 이번에 정부의 공식 조사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또 조사 결과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도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기준법상 초단시간 근로자에게는 주휴수당(근로자가 한 주를 개근하면 추가로 지급하는 하루 치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사업주들이 주휴수당 부담을 덜기 위해 근로자를 고용하는 시간을 쪼개면서 이른바 ‘쪼개기 알바’가 급증한 사실이 이번 조사로 확인된 것이다.


○ 임금 격차는 완화됐지만…

이날 함께 발표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 분포 변화’(김준영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동향분석팀장)에 따르면 저임금(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 근로자 비율은 지난해 6월 기준 19.0%로 전년(22.3%)보다 3.3%포인트 감소했다. 임금 격차가 다소 완화된 것이다.

그러나 김준영 팀장은 “분석 단위를 ‘개인’이 아닌 ‘가구’를 대상으로 소득불평등을 분석한다면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 소득까지 감안하면 가구소득 격차는 오히려 커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 불평등이 개선됐다고 믿는 현 정부의 산하기관 조사에서 이런 분석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청와대는 근로소득 통계를 토대로 소득 불평등이 개선되고 있다고 홍보했지만 자영업자의 소득까지 포함된 통계청의 가계소득동향에서는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나 “통계를 입맛대로 해석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이날 발표된 보고서 2개는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부는 이달 내로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8명을 새로 위촉하고, 최저임금 심의에 참고하도록 보고서 2개를 최저임금위에 보낼 예정이다. 이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려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동결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공약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실태 조사를 다른 업종으로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고용부는 FGI 방식의 최저임금 실태 조사를 추가로 진행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이번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청소, 경비 등 사업서비스업을 같은 방식으로 조사한 뒤 결과 보고서를 최저임금위에 보내겠다는 것이다. 이 업종들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충격이 커 조사 결과가 나오면 파장이 예상된다.

유성열 ryu@donga.com·박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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