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가꾸고 그림 그리고 작곡까지… 道人같은 신부

괴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19-03-25 03:00 수정 2019-03-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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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 은티마을서 ‘귀농사목’하는 연제식 신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에서 신앙과 예술의 삶을 살아가는 연제식 신부. ‘최선의 하느님은 최선의 길로 이끄신다’는 게 그의 좌우명이다. 괴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990년대 초반 천주교청주교구 연수본당 신부였던 그는 목에 통증이 있어 병원을 찾았다. 목에서 폴립이 발견됐다. 악성은 아닌데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본당 사목이 어려웠다. 산속에서 농사짓고 기도하며 살겠다는 청을 교구에 넣었다. 1999년 그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첫 ‘귀농 사목자’가 됐다. 20일 충북 괴산군 연풍면 희양산 자락의 은티마을에 터를 잡고 있는 연제식 신부(72)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20여 년간 텃밭 농사를 하며 그림 그리고 작곡하며 살아가는 도인(道人) 같은 신부다.》
 
―귀농사목은 처음 들었다.

“신부니까 귀농에 사목(司牧)이란 말을 붙여준 거지(웃음). 첫 사례였는데 지금도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당시 교구장이 소신학교 은사이던 정진석 추기경이다. 추기경께서 ‘1999년 2월이면 자네를 해방시켜 준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켜 주셨다.”


―지금 목 상태는 어떤가.


“지금 말하고 있으니 좋아진 것 아닌가. 그래도 조심하려고 애쓴다. 목에 이상이 생긴 것도 묵언(默言) 수행하라는 하느님의 은총 아닌가 싶다. 화가 나도 참아야 하니까.”

―수염 때문에 도인 소리는 안 듣나.

“도인 같다, 스님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내 고향인 충북 음성의 감곡성당을 세운 프랑스 출신의 임 가밀로 신부(1869∼1947)와 인연이 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가 젖이 나오지 않자 임 신부님이 소젖을 짜서 내게 줬다고 한다. 훗날 그분을 닮을 게 뭐 있나 생각해 보니 수염이었다.(웃음) 면도 안 하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지금도 낯선데 1981년 파푸아뉴기니에서 5년간 선교를 자원했다.

“동창 신부가 소신학교 때 마음가짐으로 한번 가보자고 하더라. 그런데 그때 ‘연 신부, 봉고차 맘 있으면 한번 타라’ 하는 예수님 말씀이 느껴지더라. 그래서 고민 없이 갔다.”

대장장이 아버지와 수녀의 꿈을 지녔던 어머니 사이에서 그의 삶은 신앙과 예술로 이어졌다. 신부의 길은 자연스러운 외길이었다. 9남매 중 4명이 수녀가 됐다. 작곡은 광주가톨릭대, 동양화는 홍익대 대학원에서 배웠다. 2011년부터 최양업 김대건 신부, 성 프란치스코, 안중근 의사 등의 삶을 주제로 한 성악곡인 칸타타를 매년 무대에 올렸다. 올해 1월에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를 기념하는 추모 칸타타 ‘거룩한 바보’를 공연했다. 산수화를 그린 20여 차례의 개인전도 가졌다.

―향후 공연과 전시 일정은…?

“올해 9월 서울 명동대성당 지하 ‘갤러리 1898’에서 실경 산수화를 그린 전시회를 연다. 내년 1월에는 충주문화회관에서 감곡성당과 임 가밀로 신부님을 주제로 한 칸타타를 무대에 올린다.”

―성화(聖畵)는 그리지 않나.

“하느님을 그리고 싶었는데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런데 산을 보니까 모든 중생을 말없이 품어주는 하느님 모습이더라. 내게는 산이 성화인 셈이다.”

―말씀 중 불교 용어가 자주 나온다.

“여기로 오면서 전국 사찰을 돌며 불교 공부도 하고, 가깝게 있는 정토수련원 법륜 스님의 말씀도 들었다. 부처님오신날 때에는 정토수련원 가서 예불도 드리고, 반대로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곳 행자들이 이곳에서 미사도 드린다.”

―세상에는 종교 간 갈등이 적지 않다.

“등산에 많이 비유하지만, 오를 때는 길이 하나밖에 없는 듯하지만 정상에 서면 여러 길이 보인다. 자기 안의 갈등이 없으면 종교 갈등도 없다. 사랑의 신 하느님, 자비의 부처님과 하나가 되고 싶다는 염원은 다를 게 없다.”

괴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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