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293곳 연금 영향권… 재계 “경영 간섭 우려”

강유현 기자 , 이건혁 기자 , 변종국 기자

입력 2019-01-17 03:00 수정 2019-01-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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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방침 파장

국민연금의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주주권 행사가 가시화함에 따라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사 293곳(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대상)도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게 됐다.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려면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성을 먼저 보장해야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 조양호 회장 연임도 반대 가능

16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기금운용위원회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달 초까지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주주권 행사 이행 여부와 방식을 확정하기로 했다. 안건이 통과되면 국민연금은 △감사 등 임원 선임 및 해임 △사외이사 추천 및 선임 △정관 변경 △이사회 소집 등을 요구하며 경영에 관여할 수 있게 된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국민연금은 우선 한진 측에 최근 주가 하락에 대한 투자자 우려를 불식시킬 방안을 요구하면서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며 “한진 측 조치가 미흡하면 3월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연임에 반대표를 던지는 식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0년 영국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캐나다, 스위스, 이탈리아, 일본 등 10여 개국이 도입했다. 기관투자가가 회사 경영진을 견제해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면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가 오를 것이라는 취지다. 한국에선 지난해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이 알려진 뒤 대한항공 한진칼 진에어 한진 한국공항 등 상장 계열사 5곳의 시가총액이 1주일 만에 약 3200억 원 증발하면서 도입 주장에 무게가 실렸다. 16일 참여연대와 공공운수노조,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등 8개 단체는 기금운용위가 열린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며 국민연금에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요구했다.


○ 기금운용위 독립성 없이는 정치에 휘둘릴 우려

16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삼성전자(9.99%), 현대자동차(8.27%), LG전자(8.65%), SK하이닉스(9.10%) 등 상장사 293곳에서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주요 기업들이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 대상이 된 것이다.

전문가들이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국민 노후 보장과 수익률 극대화라는 연금의 기본 목적과 상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국은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라 정부나 정치권이 국민연금을 앞세워 무리한 경영 간섭을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높다. 현재 기금운용위원장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고 기금운용위에 각 부처 차관 등이 참석한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도 사실상 복지부가 선임한다. 수탁자책임전문위 내 주주권행사분과는 김경율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 등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재계에서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이번 조치가 연금 사회주의로 가는 첫걸음인 것 같다”며 “국민 대다수에게서 걷은 연금을 민간기업의 경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일본은 후생노동성이 공적연금(GPIF)을 통제하지만 주주권과 의결권 행사는 외부 민간운용사에 100% 위탁한다.

국민연금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가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지배구조를 갖추는 개혁 없이 주주권 행사를 확대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했다.

::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

국민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 지침. 투자자가 집사(steward)처럼 고객이 맡긴 돈을 관리하고 기업이 공공의 이익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등 주주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강유현 yhkang@donga.com·이건혁·변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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