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안풀렸지만 사업기회”… 기업들, 평양 가져갈 ‘보따리’ 고민

김지현 기자 , 김현수 기자 , 염희진 기자

입력 2018-09-14 03:00 수정 2018-09-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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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평양정상회담 D―4]4대 그룹 총수들 방북 동행할 듯

청와대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 총수들에게 북한 평양에서 18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제3차 남북 정상회담’에 동행할 것을 요청하면서 주요 그룹마다 ‘방북 선물보따리’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긴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지만 일부 업종에선 남북 관계 개선이 본격화하면 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4대 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직접 ‘경제분야 특별수행단’으로 동행하는 방향으로 조율하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정부 측에서 이번 방북 때 경제 안건을 주요 의제로 올리지 않을 것으로 들었다”며 “4대 그룹 총수가 직접 방북해 미래 남북 경협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전했다.

삼성은 최근 남북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남북 경제협력 자금 투자 및 사업 가능성을 검토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1999년경부터 평양에서 TV, 유선전화기, 라디오카세트 등 가전제품을 위탁 가공으로 생산했지만 2010년 남북 관계가 얼어 붙으면서 공식 철수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계열사인 현대로템이 철도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대북 제재가 풀리면 경협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현대로템은 전동차, 고속전철 등 다양한 철도차량을 만들고 철도시스템 사업도 하는 등 글로벌 철도 사업 경험을 쌓은 기업으로 꼽힌다. 대북 제재가 풀리고 경협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한반도 종단철도가 부상할 것으로 예상돼 현대로템도 적극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이동통신 사업을 하고 있는 SK와 LG는 저개발도상국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구축했던 경험을 토대로 유무선 통신망을 북한에 까는 사업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 유무선 통신망뿐만 아니라 위성과 해저케이블 등까지 같이 깔면 사업성도 높다는 게 업계의 기대다.

SK그룹은 SK텔레콤 외에 SK이노베이션 등 정유·석유화학 사업에서도 기대를 걸고 있다. 남북 경협을 통해 러시아산 원유 등을 들여올 수 있게 되면 현재 중동 지역으로 치우친 원유 도입처를 다변화하고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계열사인 SK임업을 통한 북한 산림녹화사업 추진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LG그룹 역시 LG유플러스의 통신 네트워크 사업 외에 LG상사 등을 중심으로 북한 광물 등 자원 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LG전자도 1996년부터 2009년까지 TV 부품을 북한에 제공하고 조립을 맡기는 임가공 형태의 협력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비상장 계열사인 팜한농이 생산하는 비료와 작물보호제 등을 수출할 가능성도 있다.

4대 그룹 외에 오래전부터 남북 경협에 뛰어든 현대그룹은 아직 청와대로부터 공식적인 요청은 받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현정은 회장이 참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그룹은 5월 그룹 내 ‘남북경협사업 태스크포스팀(TFT)’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현대그룹이 북측과 맺은 7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권 실현은 그룹 차원의 숙원 사업으로 꼽힌다.

포스코는 남북 경협 TF를 구성해 북한 제철소 인프라 구축 등 그룹 차원에서 대북 사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계열사 포스코켐텍은 2007년 북한산 마그네사이트를 수입하려다 남북 관계가 얼어 붙으면서 사업을 중단한 바 있다.

대북 사업 이력이 있는 국내 식품업체들도 대북 사업 물꼬가 트이는 계기가 될지 기대하고 있다. CJ제일제당, 현대그린푸드, 동서식품 등은 8월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식품 후원 및 출장조리 서비스를 맡기도 했다. 동서식품은 과거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맥심’ 커피믹스를 공급해 당시 공단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다만 문제는 대북 제재다. 과거 경협을 시도했다가 남북 관계 악화로 사업 철수 등 쓴맛을 경험했던 기업들은 보수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제사회가 여전히 대북 제재 강화를 외치는 상황에서 구체적이고 중장기적인 경협을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김현수·염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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