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단위 탄력근로제, 여름장사 빙과업체엔 무용지물”

박은서 기자

입력 2018-06-22 03:00 수정 2018-06-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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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태풍이 온다]<5>속 타는 식음료업계

21일 찾은 경기도 A업체 음료 제조 공장의 탄산 청량음료 제조라인에서는 음료가 담긴 페트병들이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다. 자동화가 잘된 공장이라 얼핏 보기엔 근로자가 그다지 필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생산지원담당 이모 매니저의 설명은 달랐다. 직원들이 수시로 모니터링을 통해 생산흐름을 체크해야 하고, 기계를 정비하는 직원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매니저는 “여름철 극성수기를 앞두고 정부 방침에 맞춰 추가 인력을 고용했다. 하지만 성수기와 비수기 간 생산량의 차이가 너무 커 겨울철엔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감이 안 잡힌다”고 말했다.

성수기와 비수기 수요 차이가 큰 식품업계는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제 위반 시 처벌을 6개월 유예한 조치에 대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계절에 따라 생산량 차이가 큰 기업이 많아 바쁠 때 더 일하고 덜 바쁠 때 쉬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최대 1년으로 늘려달라는 것이다.


○ “3개월은 너무 짧아”

이 공장에서 만드는 탄산음료는 5∼10월 6개월간의 수요가 나머지 기간보다 20%가량 높다. 특히 극성수기에 들어서는 다음 달부터는 탄산음료 제조라인이 주 7일간 생산하는 형태로 바뀐다. 예년엔 추가 수당을 주며 2조 2교대 근무를 시켰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2조를 3조로 늘렸다. 이에 따라 180명이던 직원은 200명 선이 됐지만 비수기에는 추가 채용 인력이 유휴인력이 될 수밖에 없다.

현행 근로기준법상에선 노사가 합의할 경우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최대 3개월로 늘리도록 돼 있다. A업체의 관리자 이모 씨는 “3개월 탄력근로제는 1개월 반씩 노동 강도를 달리 하라는 뜻으로 성수기가 6개월, 비수기가 6개월인 음료업계에서는 사실상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여름철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높은 빙과업계에서도 주 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빙과업계는 성수기와 비수기 생산량이 3배 가까이 차이가 날 정도로 계절적 요인의 영향이 큰 업종이다. 한 빙과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빙과 매출의 40%를 6∼8월 3개월간 냈을 정도로 빙과시장은 여름철 장사에 의존적”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빙과업체 B사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전체 생산 인력의 10%를 추가 채용 중이다. 성수기 생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B사 관계자는 “5∼8월의 성수기 때는 12시간씩 교대 근무를 하지만 비수기엔 3교대로 일한다”며 “일단 성수기에 맞춰 인력을 뽑고 있는데 비수기 인력 활용 방안을 생각하면 답답하다. 탄력근로제가 1년만 되어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견 음료업체 C사는 일단 다음 달부터 3개월 탄력근로제를 시범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제도가 시작되는 만큼 일단 현행법 내에서 시범 적용하기로 한 것”이라며 “하지만 연중 5개월을 판매 성수기로 보고 있기 때문에 3개월 탄력근로제 적용이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 “인력난 대안, 외국인 특례고용허가제 적용을”

월드컵 시즌에다 여름철에 접어들면서 ‘치맥(치킨과 맥주)’과 복날 삼계탕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예년 같으면 즐거운 비명소리가 들려야 할 닭고기(육계) 생산업체들에선 요즘 신음소리가 나온다. 최저임금이 오른 데다 근로시간 단축까지 적용되면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육계협회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하림 참프레 마니커 등 주요 육계 생산업체가 연간 1800여 명의 인력을 추가 고용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6∼8월 성수기에 필요한 인력이 1800여 명 중 1145명이다.

송광현 한국육계협회 상무는 “육계 생산은 가공비용 중 인건비가 40%를 차지할 정도로 노동집약적이다. 최저임금이 올라 경영 압박 요인이 됐는데 주 52시간 근무제까지 적용되면서 이중고에 처했다”고 말했다.

일부 업체는 여름철 수요에 일단 맞추기 위해 사람을 뽑으려 하지만 닭을 잡는 작업이 구직자들 사이에선 ‘피해야 할 일’로 소문나면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외국인 특례고용허가제를 적용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은 외국인 특례고용허가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 육계업체 관계자는 “최저임금에 근로시간 단축까지 적용돼 경영 압박이 큰데 여기에 인력난까지 겹쳐 어렵다”며 “탄력근로제 단위를 1년으로 늘려줄 수 없다면 당장 주 52시간 근무제를 맞추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는 길이라도 열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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