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과 수익… 공공기관, 두 토끼 잡아야 지속가능한 성장”

이미영기자

입력 2017-12-11 03:00 수정 2017-12-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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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실적 평가지표’ 심포지엄… 공기업학회-동아일보 공동주최

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8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지표 특별 분석 심포지엄’에서 김연성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가 공공기관 경영전략 우수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정부는 지금까지 매출, 영업이익 같은 재무적 성과 지표를 중심으로 공공기관을 평가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일자리 창출, 근로여건 개선, 지역사회 발전처럼 사회적 가치를 높인 공공기관에 이전보다 더 큰 인센티브를 줄 것이다”

곽채기 동국대 사회과학대학장은 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8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지표 특별 분석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한국공기업학회와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한 이날 포럼에서 그는 “문재인 정부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재균형(rebalancing)을 추구하고 있다”며 “공공기관은 사회적 가치와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 경영평가 방식을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날 심포지엄은 새로운 평가지표의 방향을 예측하고 대응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개최됐다. 특히 토론자들은 동아일보가 발행하는 경영 전문 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한글판에 소개된 생생한 기업 사례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대응 전략을 제시했다. 이날 행사에는 동아일보가 운영하는 ‘공공기관 전략적 성과관리’ 2기 수강생 및 공공기관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해 강도 높은 토론을 이어갔다. 이날 발표 및 토론 내용의 핵심을 요약한다.


○ 시장 가치에서 사회적 가치로

전문가들은 앞으로 사회적 가치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이를 어떻게 공공기관의 사업목표에 반영할지를 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1980년대 이후 30여 년을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와 공공성 훼손에 대한 반성이 시작됐다고 본다”며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공공기관들의 새로운 사업 목표나 비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가치를 높인 사례로 지난 추석 연휴 당시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요금소를 무료로 개방한 사례가 언급됐다. 곽 교수는 “한국도로공사가 이 조치로 약 560억 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경제성만 놓고 보면 나쁜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측면에선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560억 원이라는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해야 하는지 정부와 공공기관이 잘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금현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DBR에 소개된 유한킴벌리의 노령인구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인 ‘액티브 시니어 캠페인’,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무료로 컴퓨터 교육을 제공해 이공계 인재를 육성하는 IBM의 ‘피-테크(P-TECH)’ 사례를 제시하며 사회공헌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금 교수는 “공공기관들이 단기적인 생산성 향상 외에도 공공의 이익을 제고하기 위한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최우선 경영 목표를 공공주택 건설에서 주거 복지 향상으로 수정한 사례를 들며 “사회적 가치는 정량적으로 성과를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게 단점인 만큼 사회적인 영향력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 마련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성장도 포기할 수 없어

하지만 사회적 가치에만 매몰돼 공공기관의 성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면서 새로운 경영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공공기관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김연성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는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선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는 언러닝(Unlearning)이 중요하다”며 “새롭게 배우고 역량을 키워나가기 위한 혁신 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DBR에 소개된 ‘리얼 옵션(Real Option)’을 예로 들며 미래에 다가올 현실을 세분하고, 여러 가능성에 대비해 적은 규모의 자원이라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스크 관리를 통해 향후 경영환경이 악화됐을 때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작은 규모로라도 신사업을 추진하게 될 때, 새로운 시장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 진보에 걸맞은 업무 효율성 확보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장시간 근무나 조직 내 충성도를 강요하기보다 직원의 개성과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업무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임효창 서울여대 교수는 “공공기관 내 만연한 불필요한 관행을 없애고, 각 공공기관의 특성에 맞춰 선진기업의 조직 문화나 업무 시스템을 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완선 공기업학회 회장(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는 “최근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단기 지향적으로 가고 있는데 공공기관도 시야를 넓혀 글로벌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 방안 마련해야

심포지엄 후반부에는 R&C(Research&Connection)위원 5명이 나서 공공기관 경영평가와 관련된 대안을 논의했다. R&C위원은 공공기관에서 다년간 근무한 후 은퇴한 박사급 인력으로, 한국공기업학회가 내부 전문가 양성을 위해 위촉했다. 이들은 정부가 제시한 과제에 매몰돼 단기적인 목표만 달성하는 악순환을 근절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KOTRA에서 근무한 우기훈 위원은 “과거 사례를 볼 때, 예컨대 일자리 창출이 정부의 주요 과제로 제시되자 각 공공기관이 이른바 ‘숫자’를 채우기 위해 형식적으로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거나,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성과 달성에만 치중했다”며 “좋은 취지의 정책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사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해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 위원은 또 DBR에 소개된 프랑스의 ‘라 프렌치 테크(La French Tech)’ 정책을 벤치마킹 사례로 들었다. 라 프렌치 테크는 프랑스 정부가 공공기관과 함께 2013년부터 추진해 온 스타트업 육성 및 해외 진출 정책이다. 이 정책은 특히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 성장에 목표를 두고 교육 프로그램, 업무 공간 제공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창업 인프라 조성 및 일자리 창출에 힘쓰고 있다.

이 정책의 일환으로 ‘에콜 42’라는 전문 코딩 교육기관을 통해 3000명의 전문 인력을 양성했고, 철도기지를 활용해 조성한 세계 최대 스타트업 캠퍼스에 1000개 기업을 입주시켰다. 이처럼 적극적인 정부와 공공기관 노력 덕에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들이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한국공기업학회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열린 공로상 시상식에서는 오연천 울산대 총장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오 총장은 “공공기관의 경영 효율성과 공공성이 양립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공공기관만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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