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받아 외제차 굴리고 명품 쇼핑한 유치원장

임우선기자 , 우경임기자

입력 2017-02-22 03:00 수정 2017-02-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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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원 운영비는 원장 쌈짓돈

자라나는 영유아들의 교육과 보육을 위해 정부·학부모가 지불한 돈이 유치원·어린이집 운영자들의 개인 주머니로 줄줄 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치원 자금을 유용해 명품 백을 사고 외제차를 굴리는가 하면 자녀의 연기학원비와 자신 및 남편의 해외여행 경비로 쓰는 등 일부 유치원의 자금 운용에서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다. 그러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이런 관행을 바로잡지 않고 수년간 문제를 방치한 정부가 더 큰 문제란 지적도 나온다.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은 21일 교육부(유치원 관할), 보건복지부(어린이집 관할)와 함께 유치원 55곳과 어린이집 40곳의 재정 운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전국 5만1447곳에 달하는 유치원 및 어린이집 가운데 9개 대도시의 규모가 큰 시설 95곳(0.18%)만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91곳에서 609건의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사실상 거의 모든 곳이 자금 운용 위반행위를 한 것으로, 액수는 205억 원에 달했다.

가장 문제인 곳은 ‘사립유치원’이었다. 전체 부당 사용액 205억 원 가운데 유치원이 182억 원을 차지했다. 교육부는 “대부분의 국공립유치원, 어린이집은 정부의 재무회계시스템을 이용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며 “그러나 사립유치원들은 이 같은 재무관리시스템이 없어 기관 운영비를 개인 쌈짓돈처럼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자금 빼돌리기 수법은 상상을 초월했다. 전체 원생 1500명 규모의 대형 유치원 3곳을 운영하는 설립자 A 씨는 유치원 자금을 이용해 자신의 외제 차 3대의 보험금을 내는가 하면 5800만 원 상당의 도자기 등을 산 뒤 “학부모 선물용으로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유치원 내에 어학원이 있는 것처럼 꾸민 뒤 유치원 통장에서 어학원 통장으로 20억 원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유용한 돈이 2년 반 동안 39억3000만 원에 달했다.

또 다른 유치원 원장 B 씨는 유치원 자금 11억1000만 원을 빼돌렸다. 두 아들의 대학등록금과 연기학원 수업료 등 3900만 원을 원비에서 지출했고 노래방 등에서 874회에 걸쳐 개인카드를 쓰고 경비 처리했다. ‘교직원 선물 구입’ 명목으로 루이뷔통에서 가방과 지갑 등을 샀는데 그런 돈이 2년간 5000만 원에 달했다.

2개의 유치원을 운영하는 원장 C 씨는 총 6억 원의 유치원 자금을 남용했다. 그는 남편의 캐나다 여행경비 880만 원과 현지에서 구입한 156만 원짜리 블루베리 건강식품까지 ‘교재비’로 처리했다. C 씨는 남편이 운영하는 교재·교구업체에 교구 구입 명목으로 3억1000만 원을 보냈지만 그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는 “정도가 심각한 8곳을 수사 의뢰했다”며 “유치원의 재무관리를 개선하기 위해 9월부터 세입·세출 항목을 세분화해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장기적으로 △회계 관리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고 △직원 급여를 공시하게 해 자율적 개선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유아 교육·보육을 위한 정부 지원금이 연간 12조 원 넘게 집행되고 있고 0.18%의 기관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05억 원 규모의 자금 유용이 적발된 상황을 감안하면 정부의 대책이 너무 안이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학부모 이모 씨는 “이런 문제는 수년 전부터 제기됐지만 사립유치원의 반발로 바뀌지 않은 것”이라며 “장기 대책만 말하는 정부가 과연 상황을 개선할 수 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임우선 imsun@donga.com·우경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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