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방어 손발 묶여… 본사 해외로 옮겨야하나 고민”

김도형 기자 , 서동일기자

입력 2017-02-17 03:00 수정 2017-02-17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중소-중견기업 “상법 개정 반대”

“열심히 회사를 키워놔도 언제 경영권이 다른 곳에 넘어갈지 모른다고 하면 누가 기업 하려 하겠습니까. 기업 하지 말라는 얘기 같아서 요즘엔 본사를 해외로 옮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전자부품 관련 코스닥 상장사 대표는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에 대한 기자의 전화에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황금주’(주요한 경영 사안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주식) 등으로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해외 흐름과 반대로 국내에서는 오히려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막으려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16일 ‘기업지배구조 관련 상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단체 공동 성명서’를 낸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의 설명 자료에는 상법 개정에 따른 중소·중견기업의 경영권 위협 실제 사례가 열거됐다. 한 예로 지주회사 A사의 자회사인 B기업의 지분 구성은 지주회사 65.75%, 국민연금 6.78%, 국내 기관투자 1.06%, 외국 기관투자 7.48%, 기타 18.93%이다. 그런데 상법 개정안이 시행돼 감사위원 분리 선출 때 단일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면 A지주회사(3%), 국민연금(3%), 국내 기관투자(1.06%), 외국 기관투자(7.48%), 기타(18.93%)로 지분이 구성된다. 헤지펀드 등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이 합심하면 자신들을 대리하는 감사위원을 선출해 기업 기밀을 곶감 빼먹듯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소·중견기업들은 대기업과 달리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며 더 큰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또 다른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는 “대기업은 경영권을 공격당하면 대응이라도 하고 언론에 보도라도 될 텐데 작은 기업은 그렇게 하기도 힘들다”며 “경쟁사에서 이사회에 참여하려는 것도 막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농심의 경우 농심홀딩스(32.72%), 신춘호 회장(7.40%), 율촌재단(4.83%) 등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45.49%다. 하지만 상법 개정안을 적용하면 감사위원 선출 때 의결권은 9.54%로 제한된다. 한미약품도 비슷하다.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가 보유한 41.37%의 지분으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단 3%에 불과하다.

중소·중견기업들은 ‘대기업 경영활동 위축’이 국내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도 경계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 중에는 대기업 협력업체로 성장해온 곳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해외 투기자본의 목소리가 커지면 대기업들은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주주를 달래기 위한 배당 확대 등에 치중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대기업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중소·중견 협력업체의 성장도 정체될 수밖에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미래 성장보다 경영권 방어에 신경을 쏟게 되면 국가경제 전체가 활력을 잃고 그로 인한 부작용을 중소·중견기업들까지 고스란히 짊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상법 개정안이 대기업의 장기 투자 분위기를 위축시킬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중대표소송제가 한 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 경영진의 투자 결정에 불만을 가진 모회사 주주라면 얼마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만약 자회사 경영진이 장기적 사업 육성을 위해 거액의 투자 결정을 할 경우 모회사 지분을 갖고 있는 투기 자본이 “모회사 주주 이익을 훼손시켰다”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자회자의 적극적, 장기적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미국 일본 등 제도를 도입한 일부 국가에서는 소(訴) 남발을 방지하기 위한 엄격한 조건 속에 이를 인정하고 있다.

김도형 dodo@donga.com·서동일 기자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