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의프리킥]‘절대군주 기업문화’로 4차 산업혁명 어렵다

허문명논설위원

입력 2017-01-20 03:00 수정 2017-01-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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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논설위원
 # 3년 전 A그룹 회장과 3명의 부회장이 미국 최고 명문대의 한국학 연구소장실을 방문했다. 1시간의 면담 내내 회장만 발언을 하고 부회장들은 대화 내용을 받아 적기만 했다. “미국의 자유로운 기업문화를 배우러 왔다는 사람들이 권위적인 문화에 길들여 있으니 새로운 상상력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연구소장은 전한다.

 # 또 다른 대기업 B그룹 이야기다. 매일 아침 6시 반에 출근하는 회장을 사옥 현관에서 기다리다 문을 열어주던 실세 부사장이 있었다. 어느 날 회장이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옆에 서 있던 부회장에게 “저 사람, 아직도 회사에 다니나?” 했다. 그날로 부사장은 집에 갔다. 사흘 뒤 회장은 현관 앞에서 만난 부회장에게 “아침마다 문 열어주던 걔는 왜 안 보이나?” 물었다. 부사장은 그날로 다시 출근했다.


황제처럼 구는 재벌 오너들

 서울대 교수로부터는 이런 말을 들었다. “모 재벌기업 회장, 부회장, 사장 10여 명이 모인 회의실에서 프로젝트를 발표한 적이 있다. 부회장 두 사람이 부정적 의견을 냈다. 그러자 갑자기 회장이 자기보다 한참 연상인 부회장 이름을 부르면서 ‘야, (추진)해’ 하고 반말로 지시를 내렸다. 분위기는 얼어붙었고 부회장은 머리를 조아렸다. 그룹 오너가 황제처럼 구는 모습을 처음 본 거라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정치는 민주공화제이지만 많은 대기업은 ‘절대 군주’가 지배한다. 기업인들의 제왕적 리더십을 보며 분노에 앞서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은 한국의 구시대적 기업문화로 과연 4차 산업혁명 파도에 올라탈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올해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핵심 의제는 리더십이었다. 초(超)불확실성 시대의 해법은 결국 리더십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Responsive and Responsible Leadership)’이 핵심 키워드로 다뤄졌다. 변화를 세심하게 읽고 미래를 책임 있게 이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LG전자 프랑스법인을 10년간 이끈 에리크 쉬르데주는 2015년 ‘한국인은 미쳤다’란 책에서 “한국 기업문화는 효율성과 목적 달성을 위한 에너지가 대단하지만 너무 위계적이고 군사적”이라며 “이런 문화로는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려면 기업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리더십만이 인재들을 춤추게 할 수 있고, 명령 복종 획일성이 지배하는 기업문화를 창의 자율 다양성이 꽃피는 분위기로 바꿀 수 있다.


촛불·태극기 넘어 미래를

 제조업이 지배하던 시대 한국은 세계에 내로라할 만한 스타 기업들을 일궈냈다. 농업적 근면성에 군사문화가 가미된 엄청난 집중력의 긍정적 측면이 작동한 결과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게임의 판을 바꾸고 있다. 한국은 그저 일자리 감소만을 걱정하며 관망하고 있을 뿐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에서 밀리면 한국 경제는 선진국에 편입되고 예속될 수밖에 없다.

 정경유착도 끊어내야 하지만 기업 리더십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의 개념도 모르는 대기업 오너들이 허다하다. 구시대 오너들은 용퇴하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전문경영인 제도도 전향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촛불, 태극기도 좋지만 미래 먹거리가 우선이다. 선장도 없고 엔진도 꺼져가는 대한민국호(號)를 생각하면 목이 탄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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