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ase Study]‘싼 티’ 없고 품질 손색없고… “가성비 甲” 입소문

고승연 기자

입력 2017-01-16 03:00 수정 2017-01-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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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거인 이마트 ‘노브랜드 전략’의 성공비결

 수년 전부터 유통업의 위기에 대한 경고가 본격적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디지털 혁명과 모바일 쇼핑 혁신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데다 한국에서는 1인 가구 증가까지 본격화화됐다. 따라서 4인 가족을 기준으로 매대가 구성되고 포장단위가 만들어진 기존 오프라인 할인마트 비즈니스는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2015년 이마트의 영업이익은 실제로 전년에 비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업계의 ‘맏형’ 이마트가 이 정도라면 다른 할인마트 운영 기업들의 사정도 불 보듯 뻔한 상황. 3, 4년 전부터 유통업 전체의 위기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2014년 대형할인마트는 물론이고 백화점 실적도 제자리걸음인 상황이었다.

 유통업계의 맏형인 신세계그룹과 이마트는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유통업에서의 혁신이라는 건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까르푸나 월마트 등 이마트 등과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글로벌 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유럽에서 초고속 성장을 하는 유통업체, 알디(Aldi)와 리들(Lidl)이 눈에 띄었다. 두 회사 모두 초저가 할인매장으로 독일에 본사를 두고 유럽 전역으로 체인을 확장하고 있었다. 모든 상품 구색을 갖추진 않지만 소비자들이 꼭 필요로 하는 제품을 구비하고 좋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내세운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다른 대형마트나 창고형 매장에 비해 포장단위도 작았다. 할인마트가 아닌 ‘초저가 슈퍼마켓’의 개념이었다. 이마트 관계자들에게 하나의 질문이 던져졌다. “우리도 ‘어느 정도의 품질은 보증되지만 확실히 더 싼 제품’을 팔 수는 없는 것일까?”


○ 위기가 부른 혁신 ‘노브랜드(NO Brand)’

  ‘질 좋은 제품을 더 싸게 팔아 보자’라는 이마트의 결론은 언뜻 보면 싱겁게 보이지만 사실 엄청난 혁신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이미 ‘싼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워 성장할 수 있었던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할인매장, 대형마트였다. 여기에서 다시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완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체 브랜드(PB)’ 확장 전략이 대두됐다. 물론 예전과는 달라야 했다. 이미 대형유통업체들은 각자 나름의 PB 제품을 만들어 판매해 왔지만 이는 그동안 전혀 위기 돌파의 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PB 제품을 ‘싸구려’로 인식하고 있었다. 실제 제품의 질도 기존 제조업체 브랜드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었고 가격 차이 역시 품질을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마트에서 카트에 가득 담기에는 뭔가 찜찜하고 부끄러운 제품, 그게 바로 지금까지 PB 제품의 이미지였다. 이 인식을 뒤집을 수 있어야 했다. 1차적으로 자체 상품 개발 프로젝트 태스크포스(FT)팀이 꾸려졌다. 이것이 2014년 12월의 일이다. ‘에이스’ 위주로 조촐한 팀이 하나 구성됐다. 식품 위주의 제품 연구를 할 수 있는 4명이 모였다. 비식품 분야는 바이어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는 방식이었다. TF팀은 일본의 ‘무지’와 캐나다의 ‘노네임’처럼 특별한 브랜드 없이 제품 구색을 갖춰 판매하는 모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억지로 자체 브랜드를 만들고 홍보할 필요 없이 정말 필요한 기능과 포장으로만 내놓고 굳이 ‘네이밍’과 ‘브랜딩’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분명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들이 PB 제품을 다소 찜찜하게 생각하거나 겉으로 내보이기 창피해한다는 점을 고려해 사용 시 브랜드가 거의 노출되지 않는 제품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건전지, 화장지, 물티슈 등의 소비재와 감자칩, 초콜릿 등으로 초기 노브랜드 제품군이 탄생했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에 혹은 ‘싼 맛’에 물건을 집었던 소비자들은 ‘기대 이상의 품질’에 놀라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퍼졌고 찾는 고객은 점점 늘었다. 단순한 생활용품에서 여러 가전제품으로, 감자칩과 초콜릿 등 간단한 가공식품에서 다양한 식재료로 노브랜드 제품군은 확장돼 갔다. 원칙은 항상 같았다. 커피포트 하나를 만들더라도 ‘물 끓이는 기능’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넣지 않되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췄다. 약 1000개의 제품 구색이 갖춰진 2016년 여름 이후에는 ‘노브랜드 전문점’이 등장할 정도가 됐다.


○ 신속한 의사결정이 만들어내는 차별화

 노브랜드 이전의 PB 제품은 특정 제조사의 특정 상품을 타깃으로 놓고, 그 상품보다 얼마나 싸게 팔 수 있는지를 목표로 개발됐다. 하지만 노브랜드는 특정한 타깃 제품을 놓고 ‘대체할 수 있는 저렴한 상품’을 내놓는 방식이 아니었다. 노브랜드 감자칩의 경우 프링글스라는 직접적 타깃이 존재했지만 이미 너무 많은 종류가 나와 있던 물티슈나 장난감, 1·2인분용 밥솥 같은 제품은 딱히 타깃 제품이 존재하지 않았다. 기존 PB 제품들처럼 명백한 타깃이 존재했다면 나올 수 없는 제품들이 ‘고객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사고했기에 대거 탄생할 수 있었다. 소비자들이 ‘꼭 필요로 했던 물건’, ‘필요한 데 시중 제품은 너무 크거나 비싸고 쓸데없는 기능이 많아서 사기 곤란했던 제품들’, 혹은 ‘굳이 비싼 돈을 내고 사먹고 싶지 않던 식품들’이 노브랜드에서 나왔고 소비자들은 ‘싸구려 제품이나 식품을 산다’는 느낌이 아니라 ‘현명한 소비를 한다’는 기분으로 적극 구매에 나설 수 있었다.

 이마트가 이처럼 차별화된 자체 상품을 성공시키며 대기업으로서는 좀처럼 하기 힘든 혁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벤처정신을 갖고 자체적으로 스타트업과 유사한 조직을 만들어 최소화된 의사결정으로 제품 기획과 개발을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노브랜드 TF팀은 이마트 내 식품 전문가 4명이 모여 조촐하게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모든 제품군의 뛰어난 바이어들에게 언제나 의견을 묻고 제안을 받을 수 있는 열린 구조의 조직이었다. 편제도 본부장 직속이었고 대부분의 결정은 본부장이 직접 내릴 수 있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곧바로 정용진 부회장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제품기획, 아이디어, 개발전략 등의 상당 부분은 TF 팀원들에게 일임됐다. ‘실패해도 좋다’, ‘무엇이든 제대로 한 번 시도해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을 가능케 하는 스타트업 조직문화’는 노브랜드 TF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이는 현재 기획운영팀, 식품개발팀, 라이프스타일개발팀 등으로 조직이 나눠지고 구성원도 30명으로 늘어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철칙’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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