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의원들 지역구 예산 폭탄...청와대는 28억 원 삭감

손영일 기자

입력 2016-12-05 03:00 수정 2016-12-05 16:15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국정혼란 틈타 선심 예산 챙긴 국회]314개 사업 7410억… 작년보다 23%↑

‘최순실 예산’이 4000억 원가량 삭감된 내년도 예산안이 3일 오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는 누리과정 예산을 8600억 원 증액하는 대신 법인세율은 인상하지 않기로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강원 양구∼원통 일반국도 건설 5억 원, 충남 천안 직산∼부성 일반국도 건설 5억 원, 경북 포항∼안동 1-1 일반국도 건설 5억 원, 전남 함평∼해보 일반국도 건설 5억 원.’

 4일 동아일보가 분석한 ‘예산이 증액된 선심성 사업 314개’ 중에는 유독 5억 원 안팎의 소규모 사업이 많았다. 정부 관계자는 “일단 연구용역비만 배정한 채 예산안에 이름이 올라가기만 하면 그 다음 해에는 설계비, 공사비 명목으로 수십억, 수백억 원의 예산을 반영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마치 여야가 나눠 먹기라도 한 듯 지역별로 증액 예산이 같은 금액으로 골고루 배분된 것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예산안 전반에 걸쳐 소규모 예산 사업이 난립하면서 ‘나라 가계부’는 누더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실세 의원들의 파워

 지역구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따내려는 데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예산안 심의 때 국민들에게는 여야가 누리과정 예산 확보, 법인세 인상 등 거시적 정책을 갖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처럼 비쳤다. 하지만 물밑에선 여전히 예산안 나눠 먹기가 진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특히 여야 지도부 및 대선 주자처럼 ‘실세’일수록 지역구에 민원성 예산이 더 잘 반영되는 모습이었다.



  ‘호남 예산 지킴이’를 자처하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경우 순천대 체육관 리모델링(6억2600만 원), 순천만 국가정원 관리(5억 원) 등 지역구 사업 상당수의 예산이 늘었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충남 공주-부여-청양에도 공주박물관의 수장 공간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수장고 건립 예산 7억6000만 원이 증액됐다. 친박 실세 최경환 의원 지역구를 지나는 ‘대구선 복선전철’ 사업비는 정부 원안보다 110억 원 늘었다. 최 의원의 지역구인 경북 경산의 ‘자기유도·공진형 무선전력 전송 산업 기반 구축 사업’ 예산도 10억 원이 추가됐다.

 광진갑 선거구에 있지만 추 대표의 지역구도 관할하는 서울 광진경찰서 신축 예산도 정부안보다 7억 원이 늘었다. 유력 대선주자인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대구 수성구의 매호천 ‘고향의 강’ 정비 사업(14억 원) 등 지역구 사업 예산을 다수 확보했다.

 국민의당에선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전남 목포에 투입되는 예산이 크게 늘었다. 특히 광주∼목포 호남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예산은 무려 655억 원 증액됐다. 유성엽 사무총장의 지역구인 전북 정읍-고창에선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 사업 비용(25억 원), 정읍경찰서 신축 비용(10억 원), 정읍 생활폐기물 매립장 사업 비용(5억 원) 등이 추가됐다.


○ 최순실 게이트 유탄 맞은 청와대

 여야 실세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두둑하게 챙긴 데 반해 청와대 예산은 증액은커녕 오히려 올해보다 28억 원이나 삭감됐다.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은 올해보다 15억3100만 원(1.7%)을 올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오히려 24억9100만 원이 줄었다. 대통령경호실 역시 올해보다 72억500만 원 많은 916억7500만 원의 예산안을 제출했지만 3억4200만 원 감액됐다.

 감액된 항목은 주로 인건비였다.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은 직원 인건비를 올해보다 6.8%(22억여 원) 올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11억1000만 원 적은 예산을 받게 됐다. 대통령경호실 예산에서는 평창 겨울올림픽 경호 비용이 3억4200만 원 깎였다. 지난달 초 이재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일반인 단속조차 제대로 못해 박근혜 게이트라는 초유의 사건을 촉발시킨 청와대 공무원들이 무슨 염치로 인건비를 올려달라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를 두고 최근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마비된 것에 대한 ‘징벌적 조치’란 지적이 나온다. 예전에는 야당이 청와대 예산에 손을 대려고 하면 여당이 온몸을 던져 방어했다. 그러나 최근 여당 내부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여당 내 분위기가 악화되면서 청와대를 감싸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는 후문이다.


○ 무색해진 ‘쪽지예산 금지’

 최근 국정 공백을 틈타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쪽지예산과 예산 나눠 먹기가 기승을 부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증액된 선심성 지역구 예산 7410억 원은 지난해 국회가 심의를 통해 끼워 넣은 선심성 예산(약 6000억 원)보다 1400억 원가량 많은 것이다.

 기획재정부 역시 방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기재부는 당초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을 계기로 그간 반복돼 온 의원들의 ‘쪽지예산’ 관행을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막상 예산 심의에 들어가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증액심사소소위원회의 비공개 심사를 사실상 묵인했다. 그 결과 많은 의원들이 쪽지예산을 통해 지역구 예산 증액을 상당 부분 관철시킬 수 있었다.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지역구인 경북 안동의 선성현 문화단지 조성 예산 27억 원을 막판에 쪽지예산으로 끼워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철 부산대 정치학과 교수는 “선심성 지역구 예산 위주로 증액이 이뤄질 경우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사업들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관련기사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