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중증정신질환자… 입원 줄이자 범죄 크게 늘었다

박상준 기자 , 김재희 기자

입력 2019-04-24 03:00 수정 2019-04-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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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탈수용화 정책’ 도마위 올라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도입후, 민간시설 병상수 6년새 23% 감소
수감자중 정신질환자비율 35% 증가… 신경정신의학회 “인프라-예산 부족
탈수용화 고집땐 범죄율만 높아져… 지역사회 관리체계 갖추는게 우선”



편집형 정신분열증(조현병)을 비롯한 중증정신질환자의 ‘병원 수용도’가 낮을수록 중증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율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런 결과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5월 발간할 예정인 ‘정책백서’에 실릴 연구 실적인 ‘탈수용화와 범죄율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났다. 병원 수용도는 사용 중인 병상 수를 의미하는데 입원해 있는 중증정신질환자 숫자로 봐도 무방하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이번 연구는 1939년 영국의 과학자 라이어널 펜로즈가 정신병원 입원 환자 수와 전체 교도소 수감자 수 사이의 역상관관계를 밝힌 ‘펜로즈 가설’에 기초한 것이다. 펜로즈는 유럽 18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정신병원 입원 환자 수가 줄어들수록 교도소 수감자는 늘어난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2000∼2016년 법무부의 수감자 현황과 범죄 통계,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정신의료기관 병상 자료를 활용해 정신병원 입원 환자 수와 중증정신질환자 범죄율의 역상관관계를 확인한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국내 민간 정신의료기관 병상 수는 1990년 4964개에서 2000년 2만667개로, 2011년에는 4만6820개로 증가세였다. 하지만 2017년 5월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강제 입원 절차를 까다롭게 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시행됐고 이해 병상 수는 3만5842개였다. 병상 수가 줄면서 전체 교도소 수감자 대비 정신장애범죄자 비율은 증가했다. 2017년 정신질환 병상 수는 2011년 대비 23.45% 감소했고, 같은 기간 교도소 수감자 대비 정신장애범죄자 비율은 35.2% 증가했다. 2017년 병상 수는 전년에 비해 14.7% 감소했는데 같은 기간 정신장애범죄자 수는 8.9% 늘었다.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정신보건 관련 인프라 및 제도가 열악한 한국이 ‘탈수용화’ 정책을 유지할 경우 정신질환자 범죄율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고 이 연구서는 지적했다. 탈수용화는 정신질환자를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하면서 치료받게 하자는 것이다. 연구서는 “지역사회 중심의 관리 및 서비스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탈수용화가 진행될 경우 적절한 관리를 받지 못한 정신질환자가 범죄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인구 1000명당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수는 독일의 경우 0.27명인 데 비해 한국은 0.07명에 불과하다. 2017년 1인당 정신보건 예산은 유럽이 약 2만4000원, 한국은 3889원이다. 인구 10만 명당 정신건강전문인력 수도 유럽은 50.7명이나 되지만 한국은 16.2명에 그친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학회 측 관계자는 “선진국은 환자의 치료 권리와 사회안전의 균형을 동시에 추구하며 퇴원 후 치료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사회 정신의료시스템 제도와 예산을 마련해 왔다”며 “아직 인프라 수준이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국은 탈수용화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동우 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은 “정신질환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탈수용화에 앞서 민간 병원 중심의 정신건강 서비스를 지역사회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며 “정신보건 예산 확보와 정신의료기관 역할 재정립, 지역사회 인프라 연계 등이 먼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준 speakup@donga.com·김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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