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시계’ 이용해 우울증-암-비만 치료한다

동아일보

입력 2017-10-20 03:00 수정 2017-10-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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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기 리듬 유전자’ 치료법 각광

일주기 리듬 유전자는 호르몬이나 신호전달물질을 조절해 24시간 체제에 맞게 신체의 활동을 미세하게 조절한다. 그래픽 출처 노벨상위원회
사람의 신체는 낮밤이 바뀌는 과정 중에 멜라토닌 같은 호르몬의 분비량이 달라지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겪는다. 이런 생체 리듬은 몸속 일주기 리듬 유전자 때문에 생겨난다. 초파리에서 이 유전자를 찾아낸 과학자들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사람 또한 24시간 체제에 따른 일주기 리듬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이 밝혀지면서 생체 시계를 활용해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새로운 치료 방법에 응용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올해 2월 미국에서 열린 국제뇌중풍학회 학술대회에서 앤더스 웨스트 덴마크 코펜하겐대 뇌중풍센터 연구원은 뇌중풍(뇌졸중) 재활 환자 중 우울증 증세가 있는 환자는 청색 빛을 쬐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을 완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웨스트 연구원은 뇌중풍 환자에게서 우울증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낮에 태양 빛을 받지 않고 밤에 TV나 휴대전화에서 청색 빛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의 몸에 있는 유전자는 낮에는 빛을 받고 밤에는 빛이 사라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에 맞게 행동한다. 그런데 입원 환자는 낮에는 실내에 있고 밤에 빛을 받아 유전자의 활동이 어그러진다. 특히 청색 빛은 생체 물질에 영향을 잘 주는데, TV나 휴대전화 화면에서 청색 빛이 많이 나온다.

일주기 리듬 유전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암에 걸린다는 연구들도 발표되고 있다. 앤로르 후버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연구원 팀은 교대 근무나 시차 등으로 일주기 리듬이 흐트러지면 손상된 DNA가 제때 복구가 안 돼 암이 생길 수 있다고 지난해 분자세포학 저널에 발표했다. 일주기 리듬 유전자는 낮과 밤을 감지한 뒤 DNA 손상을 복구하는 단백질을 만드는데, 이 리듬이 흐트러지면 해당 단백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후버 연구원은 “일주기 리듬 유전자의 기능은 현재도 계속 추가로 규명되고 있다. 앞으로도 또 다른 질병의 원인을 밝혀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암제를 특정 시간에 투여하면 효과가 높아진다는 의사들 사이의 속설도 일주기 리듬 유전자로 설명할 수 있다. 암세포는 돌연변이 세포라 정상 세포와 다른 일주기 리듬을 가지기도 한다. 프랜시스 레비 영국 워릭대 교수는 2001년 암세포와 일반 세포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항암제 투여 시간을 잘 맞추면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를 의학 전문 학술지 ‘랜싯’에 발표한 바 있다. 2013년엔 대장암에 걸린 쥐에 항암제를 시간에 따라 다르게 투여할 경우 효과가 최대 3배나 달라짐을 밝혔다.

비만이나 당뇨 같은 대사질환의 원인 역시 일주기 리듬 유전자 문제와 관련 있다. 앤드루 맥힐 미국 브리검여성병원 연구원은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 수치가 높을 때 음식을 먹으면 대사질환의 주원인인 체질량 수치가 높아진다는 연구를 미국 임상영양학저널 9월 6일자에 발표했다. 멜라토닌은 해가 진 뒤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일주기 리듬 유전자가 조절하는 대표적인 호르몬이다. ‘잠자기 전에 음식을 먹으면 살찐다’는 속설이 증명된 셈이다.

오가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sol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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