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화제]타투가 조폭 전유물? 국내 최소 100만명이 몸에 새긴 예술!

김호경기자 , 박종관 인턴기자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입력 2017-07-22 03:00 수정 2020-10-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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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의 계절, 타투의 세계

[1] 한국타투인협회 최정원 부회장이 경기 안산시 자신의 타투숍에서 한 남성의 팔에 타투를 새기고 있다. [2] 시술에 앞서 최 부회장이 타투 도안을 타투 전용 전사지에 베껴 그리고 있다. [3] 전사지로 피부에 도안을 옮긴 모습. 일종의 밑그림을 그린 뒤 이 위에 타투를 새긴다. 안산=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윙∼.”

거대한 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소리의 진원지를 가늠하려고 청각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그 진원지가 피부에 닿는 순간 찌릿한 통증이 목덜미를 자극했다.

11일 서울 서초구의 한 타투숍에서 직접 타투를 받았다. 시술 전 가장 무서웠던 건 타투 머신이 내는 소음이었다. 전기로 작동하는 타투 머신은 초당 100회가량 일회용 바늘을 빠르게 상하로 움직이며 특유의 진동음을 냈다.

고교 시절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감명 깊게 봤다. 그 소설의 한 구절을 어른이 되면 꼭 타투로 새기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라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그리고 14년 만에 취재를 명분 삼아 다짐을 실행에 옮겼다.

시술 부위가 등이라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렸다. 타투이스트는 시술 부위를 알코올을 묻힌 솜으로 닦은 뒤 바셀린을 발랐다. 시술 시 피부 자극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바늘이 닿는 부위마다 통증이 달랐다. 이날 시술에 쓰인 일회용 바늘은 총 3개. 선을 그리는 바늘과 음영을 채우는 바늘이 달랐다. 손바닥만 한 생애 첫 타투는 2시간이 걸려 완성됐다. 타투 비용은 타투이스트와 시술 시간, 난이도에 따라 천차만별. 내가 낸 금액은 60만 원이었다.

타투 인구 최소 100만 명…타투 하는 의사는 10명 안팎

타투는 한때 조직폭력배의 전유물이었지만 타투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이젠 남녀노소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용, 호랑이 등 고전적인 그림부터 좌우명, 가족이나 반려동물의 이니셜까지 그 모양과 스타일도 제각각이다.

과거에는 문신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였다. 대중에게 문신이라고 하면 경찰에 검거된 조폭의 온몸을 휘감고 있는 용 문신이 전부였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자 업계에선 타투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타투가 젊은층에게 문신보다 더 익숙한 말이 됐다. 정부에서는 눈썹이나 입술에 하는 미용 목적의 문신과 구별하기 위해 예술문신, 서화문신이라고 부른다.

한국타투인협회에 따르면 국내 타투 인구는 최소 100만 명. 타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TV 방송에서 금기였던 연예인의 타투가 이젠 예능 소재가 되고 있다. 최근 방송에 복귀한 가수 이효리 씨는 타투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타투에 얽힌 시어머니와의 일화를 재치 있는 입담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법은 그대로다. 1992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국내에서 타투는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 행위다. 국내 타투이스트는 어림잡아 1만∼2만 명인데, 이 중 타투 시술을 하는 의사는 10명 내외다. 나머지는 무면허 의료 행위로 단속에 걸리면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처음에는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끝나지만 거듭 적발되면 징역을 살기도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코리안 스타일 타투’

타투의 스타일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1] 과 [2] 는 요즘 유행하는 수채화 느낌의 타투. 사람들은 이를 ‘코리안 스타일’의 ‘감성 타투’라고 부른다. 타투이스트 김도윤 씨의 작품. [3] 힙합 가수들이 주로 새겨 유명해진 ‘치카노’ 타투. 치카노는 멕시코계 미국인을 가리키는 말. 이들이 주로 광대나 성모 마리아, 해골 등의 타투를 새겨 치카노 타투로 불리게 됐다. 최정원 한국타투인협회 부회장의 작품. 김도윤·최정원 타투이스트 제공
최정원 한국타투인협회 부회장(38)은 이런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미술을 전공했다. 12년 전 미술 작품과 달리 타투는 영원히 남는다는 매력에 빠져 타투이스트가 됐다. “저희에게 타투는 본질적으로 예술입니다.”

기자에게 타투를 새겨준 타투이스트 김도윤 씨(37) 역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석사 학위까지 마치고 직장에 들어갔지만 노동 강도에 비해 월급이 형편없었다. 자신의 재능이 제대로 대접받는 직업을 찾다가 10년 전 타투에 입문했다. 김 씨 역시 “붓 대신 타투 머신, 물감 대신 잉크, 도화지 대신 몸에 새기는 예술”이라고 했다.

타투가 대중화하면서 이들처럼 미술을 전공한 타투이스트도 빠르게 늘고 있다. 최 부회장은 “미술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이 워낙 적다 보니 요즘 미술 전공생들은 타투이스트를 새로운 진로 선택지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고용노동부는 타투이스트를 미래에 유망한 신직업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인재가 몰리면서 한국 타투 수준은 해외에서 최고로 꼽을 만큼 급성장했다. 최 부회장은 “한국 타투이스트가 국제 타투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심사위원을 맡는다”고 했다. 미국 뉴욕의 유명 타투숍인 ‘웨스트4’에서 활동하는 타투이스트의 절반가량이 한국인이다.

한국 타투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해외에서 ‘코리안 스타일’로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코리안 스타일 타투는 화려한 원색과 굵은 선을 사용해 강렬한 느낌을 주는 고전적인 타투와 달리 물감이나 연필로 그린 듯한 서정적인 타투를 의미한다. 일명 ‘감성 타투’로도 불린다.

코리안 스타일 타투의 원조 격인 김 씨는 “타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보니 기존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밝은 느낌을 주는 작업을 하는 타투이스트가 많다”며 “이게 한국만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도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김 씨는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유명 타투이스트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37만 명에 달한다. 최근 개봉한 ‘옥자’에 출연한 미국 배우 스티븐 윤과 릴리 콜린스도 그에게서 타투를 받았다.

모든 타투에는 이유가 있다

제거하려면 엄청난 비용과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타투를 새기는 데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가수 나아람 씨(33)는 1년 전 손목에 종이배와 숫자 ‘0416’을 새겼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에서다. 나 씨의 남편 손목에도 노란 리본 타투가 있다. 나 씨는 “남편과 세월호 희생자 유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업사이드 다운’을 본 뒤 둘 다 감정의 울림이 컸다”며 “제가 타투를 하자고 제안했고 그때까지 타투를 한 적이 없던 남편도 흔쾌히 수락했다”고 말했다. 나 씨의 남편은 유명 래퍼인 허클베리피다.

취업준비생 박석화 씨(24)는 지난달 왼쪽 발목 뒤편에 반려견 ‘똘이’의 얼굴을 새겼다. 박 씨가 9세일 때부터 함께 자란 똘이는 올해 사람 나이로 치면 100세다. 박 씨는 “똘이와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똘이를 평생 잊고 싶지 않아 타투를 새긴 것”이라며 “이 타투는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만큼 누가 뭐라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박 씨처럼 반려동물이나 자녀, 배우자 등 가족의 이름이나 얼굴을 새기는 이도 많이 늘었다.

최 부회장에게 12년 ‘타투 인생’ 중 가장 인상 깊은 타투를 꼽아 달라고 했다. “한 남성이 찾아와 자신의 아내가 한 타투를 똑같이 새겨간 적이 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아내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세상을 떠났다더군요.”

타투이스트 김 씨는 어릴 적 화상으로 팔 한쪽에 흉터가 남은 20대 여성에게 타투를 해준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중에 그분이 인스타그램에 ‘올해 들어 가장 잘한 일’이라며 타투 사진을 올린 걸 봤죠. 타투이스트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어요.”

물론 지금도 조폭처럼 과시용으로 타투를 새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해외에서는 엄격히 금지하는 미성년자 타투 시술이 이뤄지기도 한다. 최 부회장은 “미성년자 타투는 당연히 막아야 한다”며 “어차피 걸리면 처벌받는 상황에서 돈벌이를 위해 미성년자 타투도 마다하지 않는 타투이스트가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믿을 건 타투이스트의 ‘양심’뿐

타투 인구는 늘었지만 타투에 대한 불안감까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특히 위생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의료계에서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타투 시술을 받으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처럼 혈액을 매개로 한 감염병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한 병원에서 C형 간염이 집단으로 발생했듯, 피부에 직접 닿는 타투용 바늘을 재사용한다면 각종 감염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

하지만 기자가 방문한 타투숍 2곳은 위생 관리가 철저했다. 모두 일회용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작업했다. 타투용 바늘, 잉크를 담은 작은 용기도 일회용이었다. 타투 시술 작업대는 랩으로 씌웠다가 작업이 끝나면 벗겨 폐기했다. 일회용품이 아닌 건 타투 머신과 ‘그립’으로 불리는 금속 손잡이뿐이었다. 그립은 타투 머신과 바늘을 연결해주는 부속품으로 피부에 직접 닿는 도구가 아니다. 대개 한 번 작업한 뒤 소독해 다시 쓰는데 요즘은 일회용 그립을 쓰기도 한다. 최 부회장은 “일회용품을 쓰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몇백 원 아끼자고 (바늘 등을) 재사용하는 타투이스트는 보지 못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걱정스럽다고 했다. 타투에 대한 아무런 관리 감독이 없다 보니 만에 하나 최소한의 자격도 갖추지 못한 이들이 타투를 하더라도 막을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최 부회장은 “타투가 위험하다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타투를 양성화하고 관리 감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지금까지 타투를 받는 국민의 안전은 오로지 타투이스트의 ‘양심’에 맡겨져 있었다.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현실은 계속될 것이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박종관 인턴기자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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