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에 항생제 마구 먹이는 한국

조건희기자

입력 2017-01-20 03:00 수정 2017-01-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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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年 3.41건… 노르웨이 7배… 美-獨-스페인 등 6개국 중 1위

 “한국에선 두 살이 되기도 전에 항생제를 이렇게 많이 맞아요?”

 지난해 말 국제약물역학회(ISPE) 소속 의료진과 국내 영유아 항생제 처방 실태 자료를 공유한 박병주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이튿날부터 해외 연구진의 질문 세례를 받았다. 박 교수 등 6개국 공동 연구진이 각국의 영유아 항생제 처방률을 비교한 결과 한국의 평균치가 다른 선진국보다 최대 7배까지 높게 나타나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문의를 쏟아낸 것. 박 교수는 “가벼운 감기에도 항생제를 남용하는 한국의 관행에 해외 연구진이 적잖이 충격받은 것 같았다”라고 전했다.

 박 교수와 미국 보스턴 아동병원 연구팀 등의 항생제 처방 실태 연구는 2008∼2012년 한국 독일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페인 미국 6개국에서 한 번이라도 항생제를 처방받은 적이 있는 18세 이하 소아 청소년 7474만 명의 기록을 비교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로 인한 질환에도 무차별적으로 항생제를 쓴 탓에 내성균이 창궐하면 2050년 전 세계에서 100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연구다.

 그 결과 한국에선 생후 24개월 이하 영아가 1인당 연평균 3.41건의 항생제를 처방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스페인(1.55건), 이탈리아(1.5건), 미국(1.06건), 독일(1.04건)을 크게 웃돌고, 항생제를 가장 적게 쓴 노르웨이(0.45건)의 7.6배에 달하는 수치다. 만 3∼5세의 처방 건수도 한국이 가장 많았다. 영아가 주로 미열과 배탈 등 가벼운 증상으로 동네 의원을 찾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1차 의료기관에서부터 항생제 투약을 습관으로 삼은 채 성장한다는 뜻이다.

 특히 전체 항생제 중 1차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처방한 비율은 한국이 9.8%로 노르웨이(64.8%) 독일(38.2%) 미국(31.8%) 스페인(27.7%) 이탈리아(16.5%)보다 낮았다. 이는 페니실린에 내성을 가진 균이 많아 더 강력한 항생제를 많이 쓰고 있다는 뜻이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소아과학 저널’ 최근호에 실렸다.

 이는 모든 연령에서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체 국민 1000명당 항생제를 처방받은 환자가 일평균 31.7명(2014년 기준)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3.7명보다 35%가량 많고, 비교 대상인 12개국 중 터키(41.1명)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항생제 처방률이 2002년 43.4%에서 2013년 24.5%로 줄었지만 지난해 24.8%로 오히려 늘어나는 등 20% 중반에서 제자리걸음하고 있어 정부의 항생제 처방 저감 정책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는 6월 3일부터 항생제 내성균 중 반코마이신내성황색포도알균(VRSA) 감염증, 카바페넴내성장내세균속균종(CRE) 감염증 등 2종을 표본 감시에서 전수 감시 대상으로 전환하는 등 2020년까지 항생제 내성 관리 대책을 실시하기로 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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