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일반담배 함께 피우면 더 해롭다

송혜미 기자

입력 2019-06-19 03:00 수정 2019-06-1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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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이제는 OUT!]전자담배 10명중 9명 ‘멀티 흡연’

14일 오전 8시 반 서울 종로구의 가정집. 취업준비생 이유진(가명·21·여) 씨는 눈을 뜨자마자 침대 머리맡에 놓인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의 전원을 켰다. 그는 매일 아침 침대에서 피우는 ‘모닝 담배’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야 잠이 깨고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오전 10시 학원 갈 준비를 마친 이 씨는 아이코스와 함께 일반 담배를 챙긴다. 버스정류장에서 멀리 떨어진 골목길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이 씨는 “이제야 담배 피우는 맛이 난다”며 “집에서는 냄새가 덜한 아이코스를 피우지만 밖에서는 일반 담배를 주로 피운다”고 했다.

아이코스에 이어 ‘쥴(JUUL)’ 등 신종 전자담배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이 씨처럼 일반 담배와 전자담배를 번갈아 피우는 ‘멀티 흡연자’가 늘고 있다. 신종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의 ‘대체재’이기보다 ‘보완재’ 역할을 하면서 오히려 흡연량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대다수 전자담배 흡연자, 일반 담배 못 끊어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보건복지부의 ‘2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자담배 사용자 중 일반 담배를 동시에 피우는 비율은 90.5%에 달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지선하 교수가 2013∼2015년 질병관리본부의 자료를 분석해 보니 비흡연자를 모두 포함해 멀티 흡연자는 2013년 1.8%에서 2014년 3.4%, 2015년 6.6%로 매년 늘었다.

당시는 국내에 전자담배 열풍이 불기 전이다. 아이코스가 한국에서 출시된 2017년 이전 국내 담배 시장에서 전자담배 점유율은 1% 미만이었다. 지난해 그 비율이 10%를 넘은 만큼 현재 멀티 흡연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건당국은 추정한다.

이 씨는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위해 카페로 가기 직전인 오후 4시경 다시 일반 담배 대신 아이코스를 피운다. 독한 담배 냄새에 손님들이 눈살을 찌푸릴 수 있어서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오후 8시 반까지 아이코스를 피운 이 씨는 퇴근과 동시에 다시 일반 담배를 입에 문다.

이런 흡연 행태는 멀티 흡연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근무 중이거나 담배 냄새가 신경 쓰일 때는 전자담배를 피우다가 마음껏 흡연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일반 담배로 갈아타는 식이다.


○ 멀티 흡연이 오히려 흡연량 늘려

서울대 보건대학원 황승식 교수팀이 2017년 12월 성인 28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의 55.2%는 ‘냄새가 덜 나’ 전자담배를 피운다고 답했다. 이어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로울 것 같아서’(17.2%) ‘금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10.3%)가 뒤를 이었다.

유해한 담배에 조금이라도 덜 노출되기 위해서나 금연에 앞서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보다 냄새 때문에 전자담배를 택한 경우가 훨씬 많다는 뜻이다. 이런 흡연자들은 냄새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오면 일반 담배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일각에서는 일반 담배만 피우는 것보다 전자담배와 병행하는 게 그나마 몸에 나은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유해성 논란이 있지만 액상형 전자담배의 경우 유해성분이 일반 담배보다 적다는 게 정설이다. 영국 보건당국은 금연을 힘들어하는 흡연자에게 액상형 전자담배를 금연 보조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담배를 완전히 끊고 액상형 전자담배만 피우면 모를까, 여러 형태의 담배를 동시에 사용하면 오히려 전체 흡연량은 늘어날 수 있다. 멀티 흡연으로 건강을 더 해칠 수 있는 것이다.

멀티 흡연자인 강모 씨(33)는 일반 담배를 피운 직후 액상형 전자담배를 두세 모금 더 피운다. 한동안 액상형 전자담배만 피우다가 올 초부터 스트레스가 심해 다시 일반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강 씨는 “두 담배가 주는 맛과 목 넘김이 달라 언제부턴가 함께 피우게 됐다”며 “여러 담배를 섞어 피우다 보니 흡연량이 늘었다”고 말했다. 다른 멀티 흡연자인 박모 씨(25)도 “일반 담배와 전자담배를 같이 피운 이후로 흡연량이 1.5배 정도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조홍준 교수는 “일반 담배와 전자담배를 같이 피우는 흡연자는 그렇지 않은 흡연자보다 흡연량이 많아질 뿐 아니라 니코틴 의존도도 높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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