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침대’ 사태 부른 음이온 맹신… 과학계 “건강효과 없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8-05-17 03:00 수정 2018-05-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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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침대 방사능 검출 일파만파


“(몸에 좋다는) 음이온이라면 방사성 물질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화를 불렀다.”

최근 대진침대 일부 제품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업체가 방사성 물질(핵종) 토륨을 함유한 광물인 모나자이트를 이용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건강에 좋다는 음이온 방출을 위해서인데, 과학계는 음이온을 1990년대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과 중국 등에 유행한 대표적 유사과학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음이온은 원래 원자나 분자가 음의 전기(전하)를 띠는 전자를 추가로 더 가져 전체적인 전기 성질이 음(―)을 띠는 경우를 일컫는 과학용어다. 음전하를 지닌 대기 중 성분이 세균을 죽이는 등 공기 정화 성능이 있다는 주장이 1990년대 일본에서 제기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화학자들은 음이온이라는 말 자체가 실체가 없는 용어라고 못 박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특정 물질이 아니라 수천 개 물질을 일컫는 용어인데 음이온이 특정 효과를 낸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똑같은 음이온이라도 산소에 전자가 추가된 슈퍼옥사이드는 몸 속 DNA를 공격하는 등 유독한 물질이다.

과학자들은 음이온이 해로운 유사과학인 이유로 제품이 음이온을 발생시켜도 인체나 대기에 좋은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점을 꼽는다. 올해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펴낸 ‘2017년도 생활 주변 방사선 안전관리 실태조사 및 분석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시중에서 ‘음이온 시험성적서’를 받았다고 밝힌 제품 중 25개를 음이온 측정기로 분석한 결과 수천∼수만 개의 음이온이 발생한 것으로 측정됐다. 대기 중 산소 분자를 계산해 보면 약 1g의 산소에는 1000억에 다시 1000억을 곱한 천문학적인 수의 산소 분자가 들어 있다. 수천∼수만 개 음이온이 발생해도 다른 분자에 파묻히고 만다. 그나마 진짜 음이온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공기 중에 돌아다니는 전자를 측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이온은 불안정해서 금세 안정적인 분자로 변하는 특성상 산소 음이온은 금세 해로운 오존으로 바뀔 수 있다. 의학적 효과도 검증돼 있지 않다. 2017년까지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 등록된 국내 의학연구기관의 논문 중 음이온이 인체에 미치는 효과를 다룬 논문은 단 한 건도 없다. 효과든 부작용이든 연구 자체가 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 부작용 위험은 크다. 음이온을 만드는 방법은 △전기를 흐르게 해서 공기 중의 산소를 분해하는 방법 △폭포나 샤워 때와 비슷하게 물을 고체에 부딪치게 해서 음 입자를 만드는 방법 △방사능 광석을 이용하는 방법 등 크게 세 가지가 꼽힌다. 이 중 전기 방식이 가전제품에, 광석 방식이 음이온 팔찌나 속옷 등에 각각 쓰인다. 광석을 이용하는 방법은 인체에 접촉하는 물질에 직접 넣거나 바르기 좋아 한국에서 특히 널리 쓰인다. 대진침대도 광석을 이용하는 방식을 썼다.

광석 이용 방식은 국제 방사선학계 내에서도 비판이 강하다.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USNRC)도 2014년 “미국 내에 화산재부터 티타늄, 투르말린, 제올라이트, 저마늄(게르마늄), 모나자이트 가루를 포함한 음이온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며 “방사능을 지닐 가능성이 있는 데 반해 건강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USNRC는 “음이온 제품을 지닌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조언은 버리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음이온이 과학용어로 둔갑해 유통되면서 한때 친환경 소재를 연구할 때에도 모나자이트를 넣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다. 2011년 한국콘크리트학회 가을 학술대회에서는 친환경 도로포장재에 모나자이트를 넣고 음이온 농도를 측정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건설 소재로는 많이 이용되지 않았다. 송태협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녹색건축연구센터 위원은 “음이온 건축 재료가 한때 붐을 이뤘지만 시장이 커지지 않아 사실상 도태됐다”고 말했다. 조형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그린소재평가센터 선임연구원은 “1998년부터 실내외 건설 재료의 음이온 시험을 해왔으나, 전자제품 100여 건, (건설) 소재 200여 건 시험을 한 뒤 지난해 10월 종료했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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