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열흘 남았는데… 일부 대형병원서만 존엄사 가능

조건희기자

입력 2018-01-24 03:00 수정 2018-01-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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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준비 덜된 한국]
‘임종기’ 판정 의사 2인 확보… 5명이상 윤리위 구성 등 요건
중소병원들은 엄두 못내… 작년 전국병원 6%만 “윤리위 설치”


다음 달 4일부터 연명의료를 중단하려면 한 환자를 두고 의사 2명이 동시에 ‘임종기’ 판정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제2의 진단의’를 둘 여력이 있는 병원은 일부 대형병원뿐이어서 많은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 결정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가 일선 병·의원에 배포한 안내서에 따르면 환자가 임종기에 접어들었는지는 정부가 수여한 전문의 자격증을 지닌 전문의와 담당의사(전공의 등 주치의) 등 2명이 대면 진료 후 판단해야 한다. 임종기란 회생할 가능성이 없고 치료해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이 임박한 상태다.

문제는 전문의가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둔 병원의 소속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윤리위원회는 담당의사가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요구를 거부할 경우 해당 의사 교체 여부를 심의하는 등 연명의료와 관련한 사안 전반을 맡는다. 윤리위는 종교계나 법조계, 시민단체 등의 추천을 받은 외부인 2명을 포함해 총 5명 이상으로 구성하게 된다.

지난해 9월 복지부가 전국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3325곳에 윤리위 설치 계획을 조사했을 때 “설치하겠다”고 답한 의료기관은 200곳이 채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나머지 3000여 곳은 “설치하지 않겠다”고 하거나 아예 응답하지 않았다. 새 제도에 대한 교육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형편없이 낮은 참여율이다.

윤리위를 두지 않은 병원은 공공의료원 등에 설치된 공용윤리위를 이용하거나 다른 병원의 윤리위와 위탁 협약을 맺어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연명의료계획서를 써두지 않은 환자가 실제 임종기를 맞으면 윤리위를 구성한 병원으로 옮기거나 전문의가 왕진해야 한다. 임종기 환자가 빠르면 2, 3시간 내에 숨질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환자를 옮기거나 의사가 이동하는 중에 생을 마칠 가능성이 있다.

복지부는 당초 22일부터 윤리위 등록 신청을 접수하고 병원들 간의 업무 위탁을 유도하려 했지만 전산 시스템이 완비되지 않아 28일 이후로 일정이 미뤄졌다. 의료계에선 대형병원에도 당직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모든 병원에 제2의 전문의를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박미라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중소병원에 입원한 말기 환자는 대체로 윤리위를 둔 대형병원에서 옮긴 환자들”이라며 “중소병원이 윤리위와 전문의를 두는 게 부담스러운 만큼 미리 대형병원에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쓰는 문화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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