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사람을 공격한다!

동아경제

입력 2017-08-12 13:00 수정 2017-08-12 1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밤을 잊은 도시인에게 보내는 경고…수면 부족·우울증 증가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밝은 서울 강남 아파트단지 야경.[동아일보 박영철 기자]

한여름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면 바로 머리 위에서 커다란 직각삼각형 모양을 이루는 밝은 별 세 개를 찾을 수 있다. 이 세 별 가운데 제일 반짝이는 별이 바로 ‘견우와 직녀’ 이야기의 직녀성이다. 그럼, 견우성은 어디에 있을까. 직녀성과 직각삼각형의 밑변을 이으면 멀찍이 떨어져 있는 별이 견우성이다.

직녀성과 견우성 사이에 직녀와 견우가 만나지 못하도록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은하수가 보인다. 그리고 그 은하수의 한복판에 직각삼각형의 또 다른 변을 잇는 별이 있다. 이제 사방을 살펴보면, 이 별을 꼬리로 하는 아름다운 백조 한 마리가 은하수를 따라 남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백조자리다.

직녀성, 견우성은 라틴어로 베가(Vega), 알타이르(Altair)라고 부른다. 백조 꼬리에 있는 별은 데네브(Deneb)다. 이 세 별 위치를 파악하면 여름철 별자리를 찾아볼 준비가 끝난 셈이다. 은하수를 남쪽으로 따라가며 거문고자리, 독수리자리, 궁수자리, 전갈자리, 헤라클레스자리 등을 찾을 수 있다.


비만, 우울증, 암까지 유발하는 인공조명

도시에 사는 사람은 이 글을 읽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한숨만 나올 것이다. 도시에서는 직각삼각형을 그리는 별 세 개를 제외하고는 은하수의 별무리는 물론, 각종 별자리를 그리는 여러 별을 보기가 어렵다. 가로등, 형광등, 보안등, 광고조명 같은 인공조명이 밤하늘을 빼앗아간 탓이다.

인공위성에서 찍은 지구 야경을 보면 한반도는 마치 섬처럼 보인다. 휴전선 아래 남쪽이 반짝반짝 빛나는 반면, 중국과 경계를 맞댄 북쪽은 마치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처럼 새까맣기 때문이다. 밤에 불을 켜는 일조차 어려운 북한의 전력 사정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밤낮이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휘황찬란한 빛의 잔치를 벌이던 지역, 즉 한국과 일본, 유럽, 북미 등에서 바로 이 빛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대기오염, 수질오염에 이어 빛, 정확히 말하면 인공조명이 새로운 오염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른바 ‘빛공해’의 등장이다.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동식물은 오랜 세월 밝은 낮과 어두운 밤이 번갈아가면서 돌아오는 규칙에 적응해왔다. 인공빛은 수십억 년을 내려온 이 규칙을 깨뜨렸다. 그리고 인공빛이 지구를 밝힌 수십 년은 인간을 비롯한 대다수 동식물이 이 깨진 규칙에 적응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다.

그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몸길이 1~2m로 거북 가운데 가장 큰 장수거북이 좋은 예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의 토바고 섬은 장수거북 산란지로 유명하다. 암컷이 이곳에 알을 낳으면 알에서 깬 새끼가 바다에 비치는 별빛이나 달빛을 따라 바다로 가면서 어른이 되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장수거북 새끼들이 지금은 별빛이나 달빛 대신 가로등 불빛이나 호텔 조명을 따라 바다가 아닌 육지로 방향을 튼다. 그렇게 길을 잘못 든 장수거북 새끼들은 수분 부족으로 말라 죽거나 까마귀, 갈매기, 심지어 고양이에게 잡아먹히거나 자동차에 깔려 죽는다.

장수거북 같은 듣도 보도 못한 동물의 사정은 알 바 아니라고? 빛공해 피해로부터 인간 역시 자유롭지 않다. 전등이나 TV를 켜놓은 채 잠들었다 하루 종일 몸이 찌뿌듯한 경험을 한 적 있을 것이다. 불빛이 깊은 수면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잠들려면 몸에서 호르몬 멜라토닌이 나와야 한다. 이 멜라토닌은 어두운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인공빛이 멜라토닌 생성을 방해하면 깊이 잠들기 어렵다. 이렇게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피해는 단순히 몸이 찌뿌듯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두뇌 활동이 둔해지고 비만도 생길 수 있다. 수면 부족이 배고플 때 나오는 호르몬 그렐린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고흐의 밤하늘은 어디에 있나
빛공해는 숙면을 방해하고 각종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동아일보 변영욱 기자]


이 정도는 약과다. 수면 부족과 관련한 수많은 연구 성과가 축적되고 있는데, 하나같이 심상치 않다. 수면 부족과 우울증에 관한 연구(‘최근 50년 동안의 우울증 증가는 인공조명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수면 부족이 면역 능력을 저하해 결과적으로 암세포의 공격성을 높임으로써 암을 키운다는 연구 등이 대표적이다.

요즘 유행하는 발광다이오드(LED) 같은 인공조명은 더 큰 문제다. LED에서 나오는 짧은 파장의 파란색 빛(blue light)은 동틀 때의 햇빛과 유사하다. LED 빛에 반응한 우리 뇌는 한밤중을 아침이라고 착각한다. 그 결과 몸속에서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되면 우리는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된다.

우리 집은 백열등이나 형광등을 쓰니 상관이 없다고? 지금 손에 쥐고 있는 휴대전화, 작업실의 컴퓨터 모니터, 그리고 거실 TV 화면에서 나오는 빛에도 짧은 파장의 파란색 빛이 포함돼 있다. 그러니 잠들기 전 휴대전화로 잠깐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이나 마감 뉴스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면 심각한 수면 장애를 겪을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죽기 직전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매료됐다. 그가 말년에 머물렀던 프랑스 남부의 밤하늘을 그린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1888),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1889), ‘별이 빛나는 밤’(1889), ‘사이프러스(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1890) 같은 작품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호기심 많은 과학자는 이 그림들 속 밤하늘이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별이 빛나는 밤’이나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은 고흐가 죽기 직전 1년 남짓 머물렀던 생레미의 밤하늘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우리는 북두칠성을 포함한 큰곰자리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 말년의 고흐를 짓눌렀던 삶의 고통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그가 찾으려 하던 예술혼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만약 그가 밤하늘을 잃어버린 오늘을 살고 있다면 과연 어디서 위안을 찾았을까. 밤거리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그를 위로할 수 있었을까.

지식큐레이터 imtyio@gmail.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7년 110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