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바닥 기우는 착각에 건물 뛰쳐나가”

조건희 기자

입력 2018-04-16 03:00:00 수정 2018-04-16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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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일부 외상후스트레스 악화… 침몰영상 본 뒤 직장 그만두기도

‘쿵’ 소리와 함께 배가 기울었다. 컴컴한 물이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배 안엔 단원고 친구들이 아니라 엄마가 있었다. 그 순간 A 씨(21·여)는 땀에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깼다. 꿈이라며 스스로를 도닥였지만 질식할 듯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세월호 생존자 A 씨는 지난해부터 이런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참사 직후엔 없었던 증상이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장과 김은지 마음토닥정신건강의원장(전 단원고 스쿨닥터)은 단원고 출신 세월호 생존자 75명 중 46명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위험을 추적한 결과 시간이 흐를수록 없던 증상을 호소하는 등 상태가 악화된 이들이 적지 않다고 15일 밝혔다.

조사 결과 PTSD 증상이 심각해 집중 치료가 필요한 생존자는 2016년 7월 6.5%에서 올해 1월 17.4%로 증가했다. 이소희 과장은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군대에 가면 세월호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PTSD 환자의 절반가량은 사건 후 3년이 지나면 증상이 상당히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 반대다. 오히려 일정 시기가 지난 뒤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 좌절과 분노가 심해진다.

일상생활 중 갑자기 사고 당시를 떠올리는 증상은 흔히 나타날 수 있다. 세월호 생존자 B 씨(21·여)는 건물 안에 있다가 바닥이 기울어지고 있다고 착각해 밖으로 뛰쳐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람을 구하고 싶어 응급구조사 교육을 받고 있는 장애진 씨(21·여·동남보건대 응급구조과)는 병원 실습 중 심정지 환자의 모습을 본 순간 손이 떨리고 몸이 굳는 경험을 했다. 장 씨는 13일 서울 덕성여대에서 열린 ‘세월호 진상 규명 간담회’에서 자신의 경험을 대학생들에게 담담하게 고백했다.

참사 직후엔 괜찮다가 뒤늦게 PTSD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김도연 씨(21·여)는 참사를 겪은 지 9개월 후부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몽롱한 상태로 지내던 어느 날,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을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보는 해리(解離) 증상이다. 지난해 말까지도 멀쩡했던 C 씨(21)는 직장을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안전교육 시간에 세월호 침몰 영상을 본 뒤 불안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세월호 생존자 치료를 총괄하는 고영훈 안산온마음센터장(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세월호 피해자뿐 아니라 재난을 겪는 이들이 장기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생애 전 주기’ 트라우마 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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