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15∼35세 청년층 조현병 환자 집중치료해 사회복귀 돕는다

조건희 기자

입력 2017-05-01 03:00 수정 2017-05-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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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조기 개입 프로그램’ 운영 美 메릴랜드대병원 현장을 가다

지난달 19일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 ‘위기관리대응센터’에 입소한 정신질환자들이 집단 상담을 받고 있다. 이 센터는 중증 정신질환자 신고가 접수되면 치료팀을 급파해 상담을 벌인 뒤 긴급보호소에 머무를 수 있도록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볼티모어=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션 드리스콜 씨(21)가 환청을 듣기 시작한 건 2012년 여름이었다. 본인은 깨닫지 못했다. 밤새워 MP3 플레이어와 대화하듯 중얼거리는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부모가 이듬해 그를 정신병원에 데려갔을 때에야 자신이 조현병(정신분열증) 초기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땐 그는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 “조현병 초장에 잡자” 의료진 총동원

지난달 20일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내에 있는 메릴랜드대병원에서 만난 드리스콜 씨는 “정신병원에선 치료제를 제대로 먹었는지 검사하거나 운동을 시킬 때를 제외하고는 환자를 방치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환자가 얌전히 곯아떨어지도록 격렬한 운동만 강요할 뿐, 제대로 된 치료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신병원에서 퇴원해 2014년 메릴랜드 주립대 의대의 ‘조현병 조기 개입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의 초점은 조현병 증상이 처음 나타난 지 2년이 넘지 않은 15∼35세 초기 청년층 환자가 빨리 회복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정신보건사회복지사, 직업재활 훈련가, 교육 전문가 등 의료진 5, 6명으로 이뤄진 전담 팀이 환자의 성격, 증상을 면밀히 파악해 집중 치료를 시작한다.

드리스콜 씨를 맡은 치료팀은 그에게 맞는 치료제를 찾기 위해 주 1, 2회 투약 시험을 하는 한편, 박자에 맞춰 자신의 기분을 프리스타일 랩으로 부르게 하는 등의 음악 치료를 병행했다. 음악을 즐겨 듣는 드리스콜 씨의 성격을 존중한 ‘맞춤형 치료’였다. 환청이 사라진 뒤에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자기소개서를 첨삭해 주고 통근 경로까지 상담해 줬다. 2년간의 집중 치료 끝에 그는 정신질환자 사회 복귀 시설에 취업했고, 퇴근 후에는 자살 예방 메시지를 담은 힙합 음악을 만들어 유튜브 등에 올리며 음악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미국 보건부 산하 약물남용정신건강서비스국(SAMHSA)과 각 주 정부는 드리스콜 씨처럼 젊은 조현병 환자를 집중 치료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2008년부터 연간 5억1000만 달러(약 5814억 원)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10만여 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현재 5000여 명이 무료로 집중 치료 혜택을 받고 있다.

미국이 조현병 조기 치료에 공들이는 이유는 환자 대다수가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에 처음으로 증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대다수는 정신병원 방문을 꺼리다가 증상이 악화돼 입원 치료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오랜 기간 치료받지 않은 환자는 평균 기대수명이 53세에 그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율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파올로 베키오 SAMHSA 정신건강서비스센터장은 “조현병 환자를 정신병원이나 정신요양원에 입원시키는 데 연간 4조2250억 원 넘는 정부 예산이 소요된다”며 “젊은 환자를 제때 치료하는 게 사회적 비용을 아끼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 1만2000원 vs 800원

조기 치료에 실패한 환자가 치료의 사각지대로 몰리는 것을 막고 지역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도 구축돼 있다. 지난달 19일 방문한 볼티모어 ‘위기관리대응센터’에서는 전화 상담과 출동, 치료, 주거 보호가 ‘원스톱’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정신질환자나 중독자의 상태가 급속히 나빠졌다는 신고 전화가 걸려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간호사, 중독 전문가로 구성된 치료팀이 급파돼 현장에서 상담을 벌인 뒤 긴급보호소에 머무를 수 있도록 안내하는 방식이다.

보호소에서는 열흘 정도밖에 머무를 수 없지만 환자가 원하면 주거를 지원해 준다. 수입의 30%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관내 공공주택에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정신질환자가 병원에서 퇴원한 뒤 사회 복귀에 실패하고 다시 입원하기를 반복하는 가장 큰 원인이 불안정한 직업과 주거 때문이라는 데 착안한 것이다.

메릴랜드 주가 볼티모어 위기관리대응센터 지원금을 비롯해 지역사회 정신건강 사업에 쓰는 예산은 2015년 기준 6746만 달러(약 763억 원)다. 메릴랜드 주 인구가 600만6041명인 점을 감안하면 1인당 1만2703원꼴이다. 반면 같은 해 한국 보건복지부의 ‘자살 예방 및 지역사회 정신건강 증진 사업’ 예산은 440억 원으로, 국민 1명당 783원 수준이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5월 30일 시행되는 개정 정신건강복지법(현 정신보건법)에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신질환 조기 발견·치료와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사업을 벌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관련 지원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며 “청년 위험군과 퇴원 환자를 집중 관리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볼티모어=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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