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무기력해지는 한국…2%대 성장마저도 포기해야 하나

뉴시스

입력 2019-09-14 07:08 수정 2019-09-14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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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마이너스 물가에 '디플레' 우려 엄습
고령화 속도 세계최고…내수 더 위축될 수도
대내외 리스크 점증…올해 1%대 성장 예견도



성장이 빨랐던 만큼 침체도 빠르게 찾아온 걸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교적 잘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 경제가 10년이 지난 지금 유례없는 순간을 맞이했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데다 사상 초유의 저(低) 물가 상황이 나타나면서 경제가 ‘무기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 이상의 성장률 논쟁이 의미가 없을 만큼 경기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경기 침체 논쟁에 불을 붙인 건 우리 경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마이너스(-) 물가’다. 통계청은 지난 3일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0.04%(반올림시 0.0%)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수치가 0%를 밑돈 건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5년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다. 물가 상승률이 올해 들어 내내 0%에 머물면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디플레이션(deflation)’ 우려가 눈앞에 다가온 순간이었다.

‘D(디플레이션)의 공포’는 1929년 ‘세계 대공황’에 기원을 둔다. 공급이 늘어서가 아니라 ‘수요’가 위축되면서 나타난 저물가 현상은 경기 침체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가져오는데, 대공황의 경우가 그랬다. 마이너스 물가 상황을 두고 정부가 채솟값 기저효과, 복지 정책 등 공급·정책 요인을 강조한 것은 이 때문이다. 공황을 가져올 만큼 소비와 투자가 쪼그라드는 상황은 아니란 얘기다.

그러나 정부와는 다소 다른 시각이 여기저기서 대두된다. 기획재정부 산하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내놓은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대내외적으로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김성태 KDI 경제전망실장은 “부진한 내수가 물가를 떨어트리는데 지속해서 기여해 왔다”며 “현재 상황을 디플레이션이라 단정하긴 어렵지만, 디플레이션이 닥쳐올 수 있는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 연구기관인 현대경제연구원도 내수 불황이 물가 상승 압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명확히 했다.

물가 상황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은 인구 지표다. 최근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비중이 2025년 20.3%를 기록하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년만인 2045년엔 37.0%까지 올라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 된다. 2067년엔 절반에 가까운 46.5%가 노인이다. 전체 인구를 연령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에 위치한 사람의 연령(중위연령)은 2031년, 2065년에 각각 50세, 60세를 넘긴다. 50~60대가 중간 나이가 된다는 의미다.

급속한 고령화는 경제 활력을 더욱 끌어내린다. 노인 인구는 불어나는데, 태어나는 아이는 적어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노동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여성 1명이 가임 기간(15~49세)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합계출산율)는 지난해 처음으로 1명에도 못 미쳤다. 일하는 이들이 줄면서 내수는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디플레이션으로 대변되는 ‘장기 불황’이 시작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일본이 1990년대 초 버블(bubble·부동산 시장 과열) 붕괴 후 30년간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로 당국의 정책 실기(失機)가 꼽힌다. 정부가 디플레이션 진입 초기에 대한 판단과 극복 시기에 대한 오판을 반복하면서 단기 경기 부양에만 매달려 ‘잃어버린 20년’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한국 정부도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의 권고를 근거로 대대적인 확장 재정 정책에 나섰지만, ‘미봉책’에 그친다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부형 현경연 산업협력실장은 “지금과 같이 경기 회복력이 약화된 상황에선 단기 경기 대응 과정에서의 정책 실기가 경기의 장기 침체를 유발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 교수도 “확장 재정으로 뭘 하겠다는 것인지 명확지 않다”고 비판하며 “결국 미래의 빚이 될 텐데, 흥청망청 쓸 거라면 애초에 빚을 지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때 3%대가 마지노선이라 여겨지던 경제 성장률은 이젠 2%대마저 희망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대내 경제 위축과 더불어 대외 리스크까지 커지면서 정부 스스로도 한국은행 전망치(2.2%)와 기재부 목표치(2.4~2.5%)를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장 올해 성장률이 1%대 그칠 것으로 예측한 민간 연구기관(한국경제연구원, 1.9%)도 등장했다.

KDI는 이미 지난 5월 1%대 성장 가능성을 예견한 바 있다. 다만 ‘총요소생산성’의 경제 성장에의 기여도가 2010년대와 같은 수준에 머무를 것을 전제했다. 총요소생산성이란 노동과 자본, 원자재 등 눈에 보이는 요소 외에 기술 개발이나 경영 혁신 등 효율성을 반영한 지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미국 뉴욕시립대학교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이 지표를 높이기 위한 정책적 조언을 구한 바 있다.


【세종=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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