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전자피부도 찔리면 “아파요”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9-08-26 03:00 수정 2019-08-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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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싱가포르국립대 연구팀은 초고속 촉각센서를 개발해 감촉을 느끼는 인공 전자피부를 만들었다. 사진 속 검지 끝에 촉각센서가 붙어있다. 이 연구팀은 올해 2월 원래 길이의 20배까지 늘어는 재생 가능 인공피부 재료도 만들었다. 싱가포르국립대 제공
로봇의 팔을 간질이려고 깃털을 가져가자 닿기도 전에 움찔 놀란다. 깃털이 일으킨 바람을 느꼈단다. 이번엔 손바닥을 펜으로 콕콕 찔렀다. 로봇이 결국 한마디 한다. “날카로운 물건은 조심해 주세요. 저도 찔리면 아프거든요.”

실제 감각을 느끼고 이를 표현할 줄 아는 로봇이 조만간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람보다 민감한 촉감을 갖고 심지어 고통까지 느낄 수 있는 인공 전자피부가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 전자피부는 로봇이나 인공의수 등에 입히기 위해 개발 중인 소자로, 기계의 표면을 덮어 보호하는 역할과 함께 인간에게 친숙함을 느끼게 해준다. 인간의 피부와 같이 온도와 떨림, 압력, 질감 등을 세심하게 느낄 수 있다.

벤저민 티 싱가포르국립대 재료공학과 교수팀은 대표적인 인공 전자피부 전문가다. 인간보다 빠르고 정교한 촉각센서와 신경을 개발하고 있다. 사람은 몸에 파리가 살짝 닿아도 움찔한다. 촉감을 감지한 뒤 신호를 바로 운동신경으로 전달해 근육을 움직이는 식이다. 티 교수는 이런 속도보다 1000배 빠른 속도로 촉감을 느끼고 전달하는 전자피부용 센서를 개발해 7월 ‘사이언스로보틱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240개의 센서가 각기 다른 신경신호를 만들고 전달하도록 회로를 구성했다. 인체의 감각수용체와 감각신경이 연결된 방식이다. 이 신호를 ‘고속도로’ 역할을 하는 주 신경으로 모아 전달하면 센서끼리 얽히고설킨 기존 인공 전자피부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피부를 만들 수 있다.

티 교수팀은 이 방법으로 각각의 수용체에 닿는 시간이 1억 분에 6초만 차이 나도 서로 다른 촉감으로 구분해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인공 전자피부를 만들었다. 이 피부는 눈이 깜빡이는 속도보다 100배 빠른 0.001초 만에 신호를 전달한다. 물체의 딱딱한 정도와 같은 질감의 차이도 0.01초 안에 구별한다. 티 교수는 올 2월에 방수 기능을 지니고 상처가 나도 스스로 봉합되는 전자피부를 개발해 ‘네이처 전자공학’에 발표하는 등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촉각 센서 개발이 활발하다. 최창순 DGIST 에너지융합연구부 선임연구원과 천성우 성균관대 연구원팀은 압력과 진동을 감지해 물체의 질감을 효과적으로 측정하는 인공피부용 촉각센서를 개발해 4월 나노기술 분야 국제학술지 ‘나노레터스’에 발표했다.

인간의 피부에서 촉각을 느끼는 ‘안테나’인 수용체 가운데 압력을 느끼는 수용체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지그시 누르는 압력을 감지하는 수용체와, 만질 때 ‘드르륵’ 느낌이 나는 거친 표면 또는 진동하는 표면을 감지하는 수용체다. 최 연구원팀은 거칠거나 진동하는 표면을 만질 때 발생하는 마찰전기 신호의 진동을 측정하는 센서와 압력센서를 결합했다. 이 센서를 부드러운 필름 형태로 만들어 인공 전자피부에 적용해 질감을 세밀하게 구분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 결과는 4월 ‘나노레터스’에 발표됐다.

장재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교수(왼쪽)와 심민경 연구원은 로봇이나 인공의수 등이 ‘고통’을 감지할 수 있게 하는 인공 전자피부를 개발했다. DGIST 제공
고통을 느끼는 인공 전자피부도 나왔다. 장재은 DGIST 정보통신융합전공 교수와 최지웅 교수, 심민경 연구원팀은 살아있는 동물처럼 ‘고통’을 느끼는 센서를 7월 개발했다.

연구팀과 문제일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최홍수 로봇공학전공 교수팀은 압력과 온도를 동시에 느끼는 센서를 만들었다. 먼저 산화아연을 매우 작고 긴 구조물인 나노 와이어로 만들었다. 이 소재는 압력을 느끼면 전기신호를 발생시킨다. 여기에 서로 다른 금속을 이어 붙인 전기회로를 덧붙였다. 열을 가하면 회로 속 두 금속의 온도 차가 생기는데, 이를 인지하면 신호가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뾰족한 압력이 가해지거나 뜨거운 온도를 접했을 때 발생하는 신호를 ‘고통’ 신호로 판단하도록 신호처리 기술을 개발했다. 이들을 결합한 결과 간단한 구조로 온도와 압력을 동시에 감지하며, 고통까지 느끼는 인공 전자피부 촉각센서를 완성했다.

이 전자피부는 로봇이나 인공보철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뾰족하거나 뜨거운 자극은 위험을 회피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래의 로봇에 중요하게 쓰일 것으로 전망된다. 장 교수는 “인공지능(AI) 분야가 발전할 때 위험요소 중 하나는 AI 로봇이 공격적 성향을 가질 가능성”이라며 “만약 로봇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로봇의 공격 성향을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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