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64조원 관세전쟁’ 불붙다

이건혁 기자 , 박재명 기자 , 윤완준 특파원

입력 2018-03-21 03:00 수정 2018-03-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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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중국산 100개 품목 곧 관세”
美, EU에 “反中 동참해야 관세 면제”
中, 美국채 매각 등 보복조치 할듯… G20회의 “보호무역 해악” 美 성토


중국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100여 개의 생필품에 64조 원 규모의 ‘관세 폭탄’을 매기는 방안을 미국이 검토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유럽연합(EU)에 대해 중국의 교역정책에 미국과 공동 대응하는 조건으로 관세를 면제해줄 수 있다는 회유책을 꺼내 들었다.

이달 초 미국이 전 세계 철강과 알루미늄 수출국에 각각 25%와 10%의 추가 관세를 매기려 할 때만 해도 무역전쟁은 미국과 전 세계 국가 간 대결구도였다. 이달 23일(현지 시간) 철강관세 발효일을 앞두고 미국이 반중(反中) 전선 구축에 나서면서 주요 2개국(G2) 사이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재편되고 있다. 초강대국 간 통상 갈등이 격화함에 따라 국제무역시장에서 미중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한국으로선 입지가 애매해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을 대상으로 600억 달러(약 64조 원) 규모의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1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관세 부과 대상에는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있었던 전자제품과 의류 소비재 등 100개 이상의 품목이 총망라됐다.

이는 미국이 지난해 중국과의 무역에서 전년보다 8% 늘어난 3752억 달러에 이르는 적자를 본 것에 대한 보복 성격이 짙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트위터를 통해 “대중(對中) 무역적자를 1000억 달러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청했다”며 추가 압박을 예고한 바 있다.

세계 주요국은 미국의 철강관세 조치를 두고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비판적이다. 피에르 모스코비시 EU 조세담당 집행위원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 “보호주의는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G20 공동성명 초안에도 개방과 포용을 강조하며 같은 우려가 담겼다.
 

▼ 美-中사이 낀 한국, 무역충돌 ‘새우등’ 우려 ▼

한자리 모인 G20 재무장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둘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이 19일(현지 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담에서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을 만나 철강관세 면제를 요청했다. 김 부총리가 각국 재무장관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하지만 EU가 미국과 정면충돌한다면 실익 없는 지루한 장기전을 선언하는 셈이다. EU가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다고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미국의 철강관세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것이어서 승소를 보장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미국을 뺀 나머지 국가들만으로 무역질서를 재편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EU에 대한 강경 일변도의 태도를 바꿔 중국에 반대하는 정책에 협조하면 관세 면제 혜택을 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블룸버그통신은 19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EU에 제시한 관세 면제 5가지 조건이 담긴 문건을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EU가 국제교역 질서를 왜곡하는 중국의 정책에 대해 미국과 공동 대처하는 한편 WTO에서 미국과 협력해 중국에 맞서는 등의 조건을 들어주면 관세 폭탄을 피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 문건에는 EU의 대미(對美) 철강 수출량을 지난해 수준으로 묶고 G20 글로벌 철강 포럼에서 EU가 미국에 협력하는 조건도 담겼다.

중국은 반발 수위를 높였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20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무역전쟁은 중국과 미국 모두에 좋을 게 없다”며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말자”고 했다.

리 총리는 무역전쟁 가능성과 외환보유액 및 미국 국채 매각 등을 통한 보복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미국이 철강관세에 이어 중국만을 대상으로 600억 달러에 이르는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이 어떤 식으로든 보복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최근 중국국부펀드(CIC)는 미국 사모펀드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 1월에는 중국이 보유하던 미 국채 100억 달러어치를 내다팔았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에 가장 많이 수출하는 품목인 항공기를 대상으로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등 미국 기업을 직접 타깃으로 한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미중 통상 갈등이 심화하면서 한국 정부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미국이 추구하는 반중 전선에 동조하기에는 한중(韓中) 교역 규모가 워낙 크다. 아직까지는 한국이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면 중국이 이를 가공해 완제품으로 만들어 파는 양국 기업 간 협력관계도 유효하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제2의 사드 보복’이 재연될 우려도 있다.

정부는 일단 G20 재무장관회의 등을 통해 미국의 통상 압력을 줄이는 데 총력전을 펴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현지 시간)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을 별도로 만나 철강관세 대상국에서 한국을 제외해야 하는 이유를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므누신 장관 측이 한국 측 입장을 이해한다는 답변을 내놨지만 관세 면제를 단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세종=이건혁 gun@donga.com·박재명 기자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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