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 막힌 강남재건축… “값 낮춰 팔고 싶어도 못팔아”

강성휘 기자

입력 2018-02-19 03:00 수정 2018-02-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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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반포동 주공1단지 3주구에 사는 A 씨(68)는 아들에게 자신이 사는 집을 상속하려 했지만 재건축 부담금이 최대 8억4000만 원까지 나올 수 있다는 정부 발표에 결국 집을 팔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고민이다. 정부가 A 씨와 같은 장기보유자의 조합원 지위 양도를 허용한 날짜보다 앞서 재건축 부담금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하면서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아예 사라졌기 때문이다.

1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잇따른 규제로 서울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는 “집을 팔고 손을 털 수 있는 퇴로가 막혀버렸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불만은 특히 10년 이상 보유, 5년 이상 거주한 1주택 장기보유자 사이에서 거세게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8·2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서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를 금지했지만 장기보유자의 재산권 행사를 막는다는 불만이 나오자 10년 이상 장기 보유한 사람인 경우 지난달 25일부터 한시적으로 조합원 지위 양도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투기가 아닌 실수요자에게 퇴로를 확보해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보다 앞선 지난달 22일 재건축 부담금 시뮬레이션을 전격 발표하면서 A 씨와 같은 장기보유 1주택자들이 집을 팔기가 어려워졌다.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G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정부의 부담금 발표 이후 장기보유자들이 1억5000만 원씩 호가를 낮추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뤄진 거래는 0건”이라고 말했다.

초과이익환수를 피하기 어렵게 된 다른 단지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실수요자를 위해 조합원 지위 양도를 허용한다면서 그보다 앞서 엄청난 규모의 부담금을 발표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라고 말했다.

다주택자와 일반 조합원 등 다른 집주인들도 퇴로가 막힌 건 마찬가지다. 설 연휴 이후부터 거래되는 다주택자 매물은 사실상 4월 1일 시행되는 양도세 중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양도세 중과를 피하려면 3월 말까지 등기 이전을 마쳐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반 조합원들 역시 지난해 8월 이후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돼 집을 팔기가 어려운 상태다. 강남구 개포동 G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정부가 시키는 대로 집을 내놓았던 다주택자뿐만 아니라 장기보유자까지 집 팔기를 포기하고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향후 강남 재건축 시장의 ‘매물 잠김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의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예상됐던 다주택자의 매물은 더 이상 나오기 힘든 데다 정부의 집중 단속으로 중개업소마저 잠정휴업 상태에 들어가면서 거래가 거의 끊기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전문위원은 “다주택자들이 증여 등을 통해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설 연휴 이후부터는 집값이 급등한 지역일수록 매물이 나오지 않는 현상이 심화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호가가 아닌 실제 거래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거래가 어느 정도 이뤄지도록 시장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짧은 시간에 ‘융단폭격’식 규제를 쏟아내면서 시장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며 “공급과 수요 모두 억누르다 보면 당장은 호가가 떨어질 수는 있어도 결국 실제 거래가 이뤄질 때에는 다시 가격이 급등하는 부작용이 생기기 쉽다”고 말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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