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맞아 ‘귀한 몸’ 된 대치동 원룸 빌라 “방 없어서 못 구해요”

동아경제

입력 2017-07-22 13:00 수정 2017-07-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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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4동 도곡초 인근 빌라촌. 방학 특수로 단기 임대 물량이 동났다.[조영철 기자]

스페셜 리포트 | 지금 대치동에선
학원 특강 들으려 지방  ·  해외에서 한달음, 한 달 거주에 석 달 치 월세 내기도


#1 서울 양천구 목동에 거주하는 주부 최모(49) 씨는 올여름 강남구 대치동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할 계획이다. 자립형사립고(자사고)에 다니는 아들이 여름방학 내내 대치동 학원에서 특강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목동에서 대치동까지 승용차로 족히 1시간은 걸리다 보니 오가는 시간을 아끼는 게 낫다는 생각에 아예 대치동 인근 빌라에 방을 얻었다.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아들이 학원에 있는 동안 최씨는 목동 집에서 남편과 둘째아이를 챙긴 뒤 늦은 밤 다시 대치동으로 간다.

#2 주재원 가족으로 중국 베이징에서 유학 중인 김모(18) 군은 6월 중순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엄마와 단둘이 귀국했다. 이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는 곳은 대치4동 허름한 빌라. 당초 단기 임대 매물로 인근 오피스텔도 알아봤지만 학원에서 가까운 게 최고라는 생각에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원룸을 베이스캠프로 정했다.

해마다 방학만 되면 대치4동 일대 빌라촌이 단기 임대 수요로 들썩인다. 학원 특강을 신청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 정도 머물다 가려는 이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대치동은 대치사거리 주변으로 수천 가구의 빌라(다세대·연립)가 운집해 있다.

주변에는 도곡초, 대현초, 휘문중·고, 대명중, 단대부중 같은 명문 학교가 포진해 있다. 이곳 빌라는 인근 아파트와 학원 및 학군은 동일하면서 매매가나 임대료는 상대적으로 낮아,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 진입을 시도하는 이들의 수요가 꾸준하다.

특히 방학 때면 비강남권에서 몰려든 학원 수강생들로 단기 임대 매물의 씨가 마른다. 도곡초 인근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원룸은 5~6월에 이미 계약이 다 끝났다. 해외에서 방학을 맞아 들어온 사람들은 6월 중순부터 월세를 내고 생활 중이다. 강북이나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은 7월 중순 이후에 입주한다”고 말했다.


학원가 사라지지 않는 한 단기 임대 수요 꾸준
대치동 학원들은 방학 특강 수강생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조영철 기자]

단기 임대료는 장기 임대료에 비해 월세가 2배 가까이 비싸다. 평소 보증금 1000만 원에 월 70만~80만 원 하는 방(33㎡ 기준)이 단기 임대 시에는 월 130만~150만 원까지 치솟는다. 또 보증금이 없는 대신 첫 달에 두 달 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야 한다. 인근 부동산공인중개사무소 한 관계자는 “잠깐 살다 떠날 사람들이라 전기요금을 안 내거나 집을 훼손할 것을 우려해 집주인들이 두 달 치 월세를 먼저 받는다. 아무 이상이 없을 경우에는 방을 뺄 때 한 달 치 월세를 돌려준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석 달 이상 거주를 조건으로 내거는 집주인도 있다고 한다. 이 경우 임차인은 대부분 석 달 치 월세를 내고 한 달여를 살다 대치동을 떠난다. 돈이 아깝지만 워낙 단기 월세 물량이 적다 보니 그렇게라도 방을 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집주인은 대부분 장기로 임대하는 걸 좋아하지, 짧게 월세 놓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부동산 중개수수료는 물론이고 도배, 장판 등 집수리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기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기 거주용 원룸은 보통 방 하나에 화장실 하나가 딸려 있다. 방에는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이 풀옵션으로 들어가 있다. 침구와 식기류, 옷 등 생활용품만 준비하면 된다. 대치동 학원 강사들 중에서도 풀옵션 원룸을 이용하는 이가 적잖다. 이들은 보통 1년 단위로 계약하기 때문에 임대료도 장기와 단기의 중간인 월 100만~110만 원이라고 한다.

한편 방학 외 시즌에는 공실인 빌라도 꽤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현초 인근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원룸 7~8개로 이뤄진 다가구주택은 장·단기 임대 물량이 따로 구분된 경우가 많다. 이 중 절반은 장기, 나머지 절반은 단기로 돌리는데 단기 임대 물량은 방학이 끝나면 수요가 뚝 끊긴다. 하지만 그렇게 몇 달 지나다 보면 또 겨울방학이 오니까 집주인 처지에선 크게 손해 보는 건 아니다. 더욱이 대치동 학원가가 사라지지 않는 한 단기 임대 수요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세대·다가구 빌라의 평균 임대수익률은 3~4%이다.

최근 5년 새 대치동 일대 빌라 가격은 10~1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적으로 부동산경기가 호황을 이룬 데다, 특히 강남은 재건축으로 주변 시세가 동반 상승했고 대치동 일대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전세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매매가와 전세가가 별 차이가 없자 ‘갭투자’ 수요가 늘면서 대치동 빌라 매매가도 자연스럽게 상승 곡선을 그렸다.

과거와 비교해 한 가지 다른 점은 교육 수요의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대치동 일대 부동산공인중개사들은 하나같이 “예전만큼 사교육 수요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새 정부가 공약한 대로 ‘특목고 폐지’가 실현되면 ‘강남 8학군’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아직은 그 바람이 불고 있지 않다는 것.

대치동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는 “특목고가 폐지되면 학군 좋은 강남으로 이사 오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또 다른 무리는 내신 비중이 높아진 만큼 학구열 높은 곳에 섣불리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올해 들어 대치동 유입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것만 봐도 분위기가 좀 달라진 듯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에서 자녀 교육 때문에 이사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가구는 2010년 11.8%에서 지난해 7.6%로 감소했다. 이에 대해 부동산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의 양지영 실장은 “자녀 교육을 위해 위장전입까지 마다하지 않은 일부 수요가 있는 반면, 거주 만족도와 개발 호재 등에 따른 시세 만족도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수요도 분명 있다”고 말했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7년 109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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