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부른 ‘無人 바람’

구특교기자 , 김배중기자 , 김예윤기자

입력 2017-07-20 03:00 수정 2017-07-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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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들 무인기기 도입 붐

1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무인계산기를 이용해 메뉴를 고른 뒤 결제하고 있다(왼쪽 사진). 한강시민공원 편의점의 무인 라면조리기도 인기가 높다. 김재명 base@donga.com·김예윤 기자

“요리랑 서빙은 제가 직접 하고 주문받는 것과 계산은 무인계산기한테 맡겼어요.”

충북의 한 대학 앞에서 일본식 덮밥집을 운영하는 최모 씨(27)는 며칠 전 일하던 직원 3명 모두를 휴가 보냈다. 방학으로 손님이 급감해 ‘긴축 운영’에 들어간 것이다. 8월 말까지 음식 조리와 서빙 모두 최 씨 혼자서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5월 말 들여온 무인계산기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한 달 인건비 260만 원을 아낄 수 있다. 최 씨는 “인건비 걱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인계산기를 선택했다”며 “이번에 최저임금이 엄청 오르는 걸 보니 역시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인건비 감당 못해…뾰족한 수 있나요”

패스트푸드 업계를 중심으로 늘어나던 무인자동화기기 설치가 최근 일반 음식점과 주유소 PC방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압박이 불을 보듯 뻔해지면서 이런 무인자동화기기를 찾는 자영업자들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롯데리아와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 업계에 따르면 무인계산기 도입 비율이 올 들어 40%를 넘어섰다. 셀프주유소는 지난해 2269곳으로, 2011년과 비교해 4배 이상 늘었다. 결제만 하면 기계가 알아서 라면을 끓여 주거나, 무인계산기에 원하는 맛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주는 ‘아이스크림 ATM기’도 등장했다.

서울 도봉구에서 140석 규모의 PC방을 운영하는 김모 씨(50)는 올 2월 400만 원짜리 무인계산기를 설치한 이후 3명이던 아르바이트생을 1명으로 줄였다. 이후 월 인건비 200만 원이 절감됐다. 좌석 계산과 음식 주문은 무인계산기가 처리하고 직원 1명이 음식을 조리해 손님에게 가져다주는 일을 한다. 김 씨는 “무인계산기를 쓰면 일손이 달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문제가 없었다. 최저임금이 많이 오른다고 하니까 주변 상인들이 기계 써보니 어떠냐고 물어온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56)는 “빠듯하게 식당을 운영했는데 갑자기 인건비를 올리면 결국 사람 줄이고 기계를 쓰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고 털어놨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인 ‘알바천국’이 19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고용주의 79.8%가 “아르바이트생 고용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 불안한 알바생, 찜찜한 소비자


무인자동화기기 제조업체들은 호황을 맞았다. 메뉴를 고르고 결제할 수 있는 무인계산기의 대당 가격은 100만∼600만 원. 매달 수백만 원을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와 비교할 때 부담이 없다는 것이 자영업자들의 인식이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최저임금이 발표된) 15일 이후 구입 문의가 3배 이상 늘었다. 공동구매 문의도 많다”고 말했다. 한 무인자동화기기 업체의 주가는 ‘최저임금 관련주’로 불리며 20% 가까이 급등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PC방을 종종 이용한다는 전모 군(14)은 “일반 PC방은 결제하려면 직원을 기다려야 되는데 무인계산기가 있으면 클릭 세 번으로 결제가 끝나 편리하다”고 말했다. 반면 주부 이맹선 씨(46)는 “손님과 직원 사이의 ‘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며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서비스를 기계가 대신할 순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식당 직원 김모 씨(25)는 “사장님이 무인계산기를 들이면서 동료 2명을 해고했다”며 “아마 손님이 더 줄면 다음 타깃은 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배중·김예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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