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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차 생태계’ 갖췄다는 울산 충전소 4곳뿐… 도시밖 운행은 불가

김도형 기자
입력 2019-03-14 03:00:00업데이트 2023-05-09 20:36:14
울산에 거주하는 직장인 유현철 씨(39)는 한 달에 한두 차례 울산 남구 옥동의 수소충전소를 찾아 자신의 수소연료전지차(수소차)인 현대차의 넥쏘를 충전한다. 유 씨는 5분 정도면 수소 4kg가량을 채울 수 있는 데다 연비도 좋아 만족스러워한다. 지역마다 수소 가격에 차이가 있지만 울산에서는 kg당 7000원. 6.3kg의 차량 수소탱크를 채우는 데 4만 원 정도가 든다. 1kg으로 100km를 주행할 수 있어 비슷한 크기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투싼이 100km에 8400원 정도 드는 것(경유 기준)과 비교해 경제적인 셈이다.

하지만 울산을 벗어나면 이 차는 운행 불가다. 넥쏘는 한 번 충전으로 600km를 주행할 수 있지만 울산을 벗어나면 수소충전소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유 씨는 “겨울에 강원도 스키장을 가려다 경북과 강원 지역에 수소충전소가 전무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왕복이 불가능해 결국 다른 차를 빌렸다”고 말했다.

○ 대표 수소생태도시 ‘울산’도 충전소 4곳 그쳐

울산에서는 360대의 수소차가 운행 중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수소경제 인프라도 국내에서 가장 잘 갖춰졌다는 평가를 받지만 수소충전소는 여전히 4곳에 그친다. 올해 3곳을 더 늘릴 계획이지만 울산을 벗어나면 수소차를 운행하기 힘들다. 이동식 충전이 불가능한 수소차는 연료가 없어 차가 멈추면 견인될 수밖에 없다.

울산은 인근에 석유화학단지가 있어 이곳에서 생산한 수소를 공급받기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이 덕분에 현재 울산지역의 수소충전소는 kg당 5000원에 공급 받아 7000원에 팔고 있다. 충전소 입장에서는 1000번을 충전하면 200만 원 정도 수익이 남는다. 그러나 수소충전기를 사용하는 데 드는 월 전기료만 250만 원에 이른다. 울산 경동수소충전소를 운영하는 성원용 대표(32)는 “사실상 손해를 보는 사업이지만 향후 사업이 커질 것을 고려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양산은 앞섰지만 쫓기는 한국

정부는 올 초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2040년까지 수소차 누적생산량을 620만 대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국가 에너지 시스템도 석탄·석유에서 수소로 바꾸는 혁명적인 변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차(투싼)를 양산하면서 한국이 수소경제를 선도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한국보다 앞선 2014년에 ‘수소사회’를 선언한 일본은 이미 수소충전소 113곳을 구축하면서 내년 도쿄 올림픽에서 에너지원으로 수소를 사용할 계획이다. 일본 도요타는 최근 프랑스 파리에 내년까지 500대의 수소차를 택시로 공급하기로 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도요타가 프랑스 기업과 합작법인을 만들어서 세계적인 관광 도시인 파리에서 수소차를 운용하면서 시장 선점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자유한국당 박맹우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수소차와 관련된 국제 표준기술 37건 가운데 한국이 보유한 기술은 1건도 없다. 일본과 미국, 캐나다, 독일 등이 대부분을 보유 중이고 등재와 관련한 주도권도 쥐고 있다. 이홍기 수소경제표준포럼 위원장은 “국제 표준이 정해지면 다른 나라도 여기에 맞춰서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무역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수소는 최적의 에너지 저장 수단”

정부가 수소경제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일각에서 전기차냐 수소차냐의 이분법적 논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수소생태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순히 전기차 대신 수소차를 타자는 것을 넘어 수소를 친환경 에너지를 저장하는 수단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소는 방전이 있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에 전기를 보관하는 것과 달리 액체 상태로 부피를 줄여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풍력과 태양광 등을 활용해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호주는 이를 수소로 전환해 액화시킨 뒤에 일본으로 수출하는 시범사업까지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매킨지가 수소산업이 2050년에 연간 2조5000억 달러(2825조 원)의 부가가치와 누적 30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 것도 에너지원으로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흥수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연구소장은 “전기는 저장이 힘들고 장거리 운송에도 막대한 설비 투자가 필요해 사막이나 바다 위에서 태양광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수소로 바꿔서 이용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계는 한국이 수소 분야에서 ‘퍼스트 무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결국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2005년에도 ‘수소경제 마스터플랜’을 내놨다. 세계적인 수소경제 확산을 예측하면서 수소충전소를 2020년까지 2800곳 만들겠다는 장밋빛 계획이었으나 결국 흐지부지 끝났다.

조철 산업연구원 산업통상연구본부장은 “수소경제의 인프라 구축을 정부가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수소차의 대량 생산을 통한 가격 효율화와 기술 선점 등이 가능해 진정한 수소경제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