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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물러선 GM “본사대출 연장-금리인하”… 관건은 진정성

강유현 기자 , 박성민 기자, 최혜령 기자
입력 2018-02-23 03:00:00업데이트 2023-05-09 22:35:54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사실상 수용한 한국 측의 자금 지원 3대 전제 조건은 정부와 KDB산업은행이 그동안 수많은 구조조정에서 지켜온 원칙을 담고 있다. 경영 실패에 대한 오너의 책임을 정부가 떠안지 않고 투명한 실사를 거쳐 경영 정상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됐을 때만 신규 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GM이 한국GM의 일자리 15만여 개를 볼모로 정부를 압박한다고 하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 ‘올드 머니’는 GM이 해결

GM이 합의한 한국 자금 지원의 전제 조건은 크게 3가지다. △경영 실패에 따른 책임을 GM이 조건 없이 부담하며 △주주, 채권자, 노조 등 이해관계자들이 고통을 분담하고 △GM이 경영 지속성을 정부와 산은에 확약하는 것이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GM이 경영 실패의 책임을 오롯이 진다는 것이다. 그간 GM은 정부와 산은에 한국GM에 대한 총 차입금 27억 달러를 출자전환하기 위한 요건으로 산은이 지분(17.02%)만큼 유상증자에 참여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를 통해 GM은 기존에 빌려준 ‘올드 머니(Old Money)’와 신규 투자에 필요한 ‘뉴 머니(New Money)’를 구분하기로 했다. 올드 머니는 경영 실패에 따른 책임을 복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인 만큼 GM이 차입금 출자전환이나 만기 연장 등을 해주면서 산은 유상증자 등의 조건을 달지 않기로 했다.

이달 말 돌아오는 한국GM의 본사 차입금 5억8000만 달러(계약 당시 환율로 약 7220억 원)도 조건 없이 연장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한국GM 공장을 담보로 잡을 수 있도록 산은이 동의해 달라는 요구와 산은의 지급보증 요구도 철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산은이 선임한 사외이사들은 23일 열리는 한국GM 이사회에서 공장 담보 설정에 대한 안건에 반대 의견을 표시할 예정이다. 한국GM 지분을 17% 보유한 산은이 반대하면 담보 설정 안건은 부결될 수밖에 없다.

○ 산은·GM 감자-GM 금리 인하-노조 인건비 감축

두 번째 합의 내용은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이다. 이와 관련해 GM과 산은은 각각 1, 2대 주주로서 기존 지분에 대한 감자를 수용하기로 했다. 감자는 주주들의 주식 가치가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구조조정에서 주주가 책임을 분담하는 대표적 방법이다.

채권자인 GM은 한국GM의 본사 차입금 일부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만기를 연장하는 동시에 금리를 인하할 예정이다.

노조도 인건비 절감, 인력 감축 등 고통 분담에 동참해야 한다. 한국GM은 2014년부터 적자에 빠졌지만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2013년 7300만 원에서 2016년 8700만 원으로 19.2% 올랐다. 노조는 이날 총파업 카드를 보류했지만 쟁의대책위원회 등을 구성해 본격적인 투쟁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이와 함께 GM은 신차 2종 배정 등 한국GM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하기로 했다.

○ 先실사 後지원…“산은, 철수 거부권 회복해야”

정부와 산은은 3대 전제를 기반으로 실사를 진행한 뒤 신규 자금 지원 여부와 규모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 실사 결과에 따라 산은은 ‘GM 출자전환→GM·산은 감자’과 함께 유상증자에 참여하거나, 대출 등 신규 투자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GM은 10년간 28억 달러를 신규 투자할 테니 산은이 지분만큼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원 형태에 따라 산은은 17%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를 유지하거나 그 미만의 소수주주, 채권자로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과 회동해 한국의 지원을 위한 3대 전제 조건을 재차 강조하며 최대한 빨리 실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의견을 전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3가지 원칙은 주초에 관련 부처 장관들이 비공식 간담회를 통해 정했다”며 “3가지 원칙에 대해 GM 측이 ‘합리적(reasonable)’이라고 답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GM이 한국 측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지만 산은이 추후 추가 협상을 통해 기존에 보유한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표적으로 GM이 한국GM 사업을 접으려고 할 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거부권’은 지난해 10월 만료됐다. 또 현재는 주주 간 계약서에 따라 15% 이상 주주인 경우 인수합병(M&A), 정관 변경, 이사 해임 등 주주총회 특별 결의사항에 대해 거부할 수 있지만 산은 지원 방향에 따라 ‘15% 룰’도 조정해야 한다. 투명한 회계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GM의 진정성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현재까지 GM이 밝힌 투자 의지와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고 투자 규모도 작다”며 “GM이 한국GM에 새로운 성장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지를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GM 같은 글로벌 기업은 언제든 생산기지를 효율이 높은 다른 나라로 옮길 수 있다”며 “한국에서 최소한 10∼15년은 생산시설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차후 대응 시나리오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유현 yhkang@donga.com·박성민 / 세종=최혜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