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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빈 기자의 세상만車]7년 뒤 당신이 탈 자동차는?

석동빈 기자
입력 2017-07-27 03:00:00업데이트 2023-05-09 23:45:10
시속 432km를 달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산 자동차’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던 부가티 ‘베이론 슈퍼스포츠’. 부가티 제공시속 432km를 달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산 자동차’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던 부가티 ‘베이론 슈퍼스포츠’. 부가티 제공
석동빈 기자석동빈 기자
‘DVD 오디오’와 ‘슈퍼오디오 콤팩트디스크(SACD)’의 오디오 규격 전쟁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레코드판(LP)과 카세트테이프 시대를 넘어 콤팩트디스크(CD)가 오디오 포맷을 평정했던 1990년대. CD의 표준을 보유한 소니-필립스 동맹은 이를 통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얻고 있었습니다. 반면 도시바-히타치-타임워너 연합군은 CD의 프레임을 깨기 위해 초고음질의 DVD 오디오라는 포맷을 들고 나옵니다. 이에 소니 동맹은 SACD라는 포맷으로 대응했습니다. 1999년과 2000년 사이 벌어진 오디오 표준 전쟁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엉뚱하게도 레인콤의 ‘아이리버’와 애플의 ‘아이팟’이었습니다. 소니 동맹과 도시바 연합군이 음질을 놓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차세대 광학 오디오 표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에 MP3라는 디지털 포맷이 등장한 것이죠. MP3의 음질은 차세대 광학식 오디오보다 열등하지만 인간의 청각이 그 차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아이러니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차세대 초고음질의 경쟁은 ‘(청각이 예민한) 반려견을 만족시키기 위한 혈투’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LP 시대 이후로 음질에 대한 음악 소비자의 욕구는 거의 늘지 않았고, 심지어는 지글거리는 잡음이 들리던 LP를 그리워하는 퇴행적인 모습까지 나타난 점을 오디오 업계가 간과한 것입니다.

반면 파일 용량이 작아서 수천 곡을 값싼 플레이어에 담을 수 있는 MP3 포맷은 대부분의 음악 소비자들을 만족시켰습니다. 소니와 도시바는 음질에 대한 소비자 효용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통찰력과 기술적 변혁에 대한 예지력 부족으로 쓸데없는 포맷 전쟁을 벌인 셈이죠.

디지털 데이터 저장 방식도 양상은 비슷합니다. 광학식 드라이브 디스크(ODD) 저장장치의 포맷은 CD(700MB)에서 DVD(4.7GB)에 이어 블루레이 디스크(25GB)까지 발전했지만 USB 메모리의 발전으로 시장은 평정됐습니다. 최근 노트북에는 ODD가 거의 사라졌고, PC에서도 곧 ODD가 소멸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동차는 예외일까요? 기자처럼 자동차를 사랑하는 ‘카 가이(Car Guy)’ 입장에서는 디지털 분야와는 전혀 다른 자동차만의 기계적인 세계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점차 설득력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1주일에 서너 건씩 지인들로부터 자동차 구입 상담이 들어오는데 올해 들어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전기차는 불편하지 않은지, 믿을 만한 자율주행차는 언제 나오는지를 물어보는 비율이 50%를 넘었습니다. 이번에 구입하는 신차가 마지막 내연기관(엔진) 자동차이고 다음 교체 주기가 되는 7년 뒤에는 자율주행 전기차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하는 비율도 80% 정도입니다. 기존 자동차를 이용한 전통적인 방식의 ‘이동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마음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최근 올드카가 인기를 끄는 퇴행 현상도 LP와 닮았습니다.

물론 자동차 회사의 모델 개발 계획과 배터리 수급, 충전시설 확보, 에너지 믹스 전략도 고려해야 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전 세계 전기차의 43%(38만 대)를 생산한 중국의 승용차가 올해 처음 한국에 수입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까운 시기에 자동차 시장에도 ‘MP3급’ 지각변동이 생길 가능성도 작지 않습니다.

이런 징후는 다른 측면에서도 관찰됩니다. 말보다 자동차가 느리던 19세기에는 속도의 향상이 자동차업계의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속도=성능’의 공식이 100년 이상 자동차 업계를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대부분의 승용차가 시속 200km를 달릴 수 있고 부가티 ‘베이론 슈퍼스포츠’는 무려 시속 432km까지 속력을 내는 시대지만 교통량이 적은 곳에서도 운전자들의 평균 주행 속도는 높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속도는 효용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뜻이죠. 대신 소비자들은 디자인이나 안전성이 더 좋은 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효용에 대한 해결책을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바로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자율주행입니다. 딥러닝 인공지능 자율주행이 일반화하면 여러 대의 자동차가 시속 200km로 군집주행하면서 공기저항을 줄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서도 사고율은 크게 낮출 수 있게 됩니다. 이동성에 대한 자동차 소비자의 인식이 바뀐다면 여러 제약조건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포맷’도 급속히 바뀔지도 모릅니다. 7년 뒤 당신은 어떤 차를 타게 될까요.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