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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타워 200m옆 도심 수소충전소… ‘수소 사회’ 내달리는 日

도쿄=박형준 특파원
입력 2019-03-18 03:00:00업데이트 2023-05-09 20:34:54

8일 일본 도쿄(東京) 미나토(港)구에 있는 수소충전소 이와타니(巖谷)산업 시바코엔(芝公園)역점. 충전소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드니 도쿄타워가 시원스레 눈에 들어왔다. 도쿄타워는 충전소에서 불과 2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충전소 입구는 왕복 6차선 도로와 붙어 있었다. 걸어서 2분 거리에 아카바네바시(赤羽橋)역과 영어유치원이 있고, 도보 5분 거리로 넓히면 도쿄타워, 아카바네초교, 미타(三田)병원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도요타의 수소차 미라이 1대가 충전소로 들어왔다. 빨간색 재킷과 흰색 모자로 멋을 낸 점원이 나와 호스를 꽂았다. 충전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4분. 워낙 도로에 차가 많아 수소차는 깜빡이를 넣고 수십 초 기다려 도로로 빠져나가야 했다.

○ 충전소 입지 규제 ‘사실상 없어’


이날 충전소에서 만난 나이토 마나부(內藤學) 이와타니산업 홍보부장은 ‘한국에 설치된 수소충전소 14개 대부분이 교외에 위치해 있다’는 기자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는 “도시 중심부에 수소충전소가 없다면 어떻게 수익을 내느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이와타니산업 수소충전소 23개 대부분은 도심에 있어도 아직 적자란다.

일본에선 수소충전소 인근에 수소차 약 900대가 굴러다녀야 충전소의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고 본다. 충전소가 도심 한가운데 있어야 할 수밖에 없다. ‘입지 규제는 없느냐’는 질문에 나이토 부장은 “고압가스 보안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병원이나 학교, 대형 상업시설 바로 옆에는 지을 수 없다. 하지만 시바코엔역점 정도 입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에선 아예 수소충전소를 지을 수 없고, 유치원과 대학 등 학교 부지가 200m 이내에 있어도 안 되는 한국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도심에 수소충전소가 있으면 시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을까. 충전을 끝낸 모리(森) 매니저는 “시바코엔역점에서 일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주민들이 항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이토 부장도 거들었다. “기술 발전으로 수소충전소의 안전성이 크게 높아졌다. 수소충전소와 가솔린 충전소에서 똑같이 연료가 샜다고 치자. 수소는 공기 중으로 날아가고, 가솔린은 땅에 흘러내린다. 폭발사고가 일어나면 가솔린 주유소 피해가 훨씬 크다.”

○ 정부 끌고, 민간기업 밀고

수소충전소와 수소차는 닭과 달걀의 관계다. 수소충전소가 많아야 일반인이 마음 편히 수소차를 산다. 역으로 수소차가 많이 달려야 사업자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수소충전소를 많이 짓는다. 일본 정부는 ‘수소충전소 설립’에 방점을 찍었다.

일본 정부는 최대 2억6000만 원 상당의 보조금을 주며 민간기업의 충전소 건립을 지원했다. 지난해 2월에는 기존 주유소와 수소충전소를 병행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수소충전소를 새로 지으려면 약 30억 원이 필요하지만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동식 충전소도 허용했다. 충전소 사업자는 대형 트럭에 수소탱크를 싣고 수요가 많은 곳으로 손쉽게 옮겨갈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 내 수소충전소는 113곳으로 한국(14곳)보다 약 8배 많다. 도쿄도와 가나가와(神奈川)현, 지바(千葉)현 등 수도권에 충전소 40여 개가 몰려 있어 수소차 운전자들이 충전소를 찾는 데 큰 불편함이 없는 수준. 다만 그 외 지역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수소충전소 무인화’를 실현할 계획이다. 운전자가 셀프로 충전하고, 운영자는 원격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인건비 부담을 줄여 운영자 수익을 개선시켜 주겠다는 의도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수소충전소를 짓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민간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충전소를 세우고 있다. 나이토 부장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 때문에 수소충전소 부문은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늘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충전소 넘어 ‘수소 사회’로 진화

현재 일본은 승용차와 가정용 연료전지에 주로 수소 에너지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대형트럭, 지게차, 자전거, 선박, 기차 등 모든 일상 영역에서 수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2014년 ‘수소 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했고, 2017년 12월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에서 ‘수소기본전략’을 수립했다.

관건은 수소 가격이다. 차량 기준으로 보면 1km 달리는 데 정부 보조금이 없어 수소차는 6.6엔, 가솔린은 8.2엔, 전기차는 1.3엔 내외의 비용이 든다. 일본 정부는 수소기본전략에서 2030년에 수소차 80만 대, 수소충전소 900곳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대규모 화력발전소에서 수소를 섞은 연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소 에너지 소비가 늘면 수소 생산업체들이 대규모 공급망을 갖출 터이고, 그 과정에서 수소 가격이 낮아질 것이라는 게 일본 정부의 구상이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