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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각 호스로 ‘중국의 테슬라’ 잡았죠

김현수 기자
입력 2018-11-23 03:00:00업데이트 2023-05-09 21:16:07
이정두 화승R&A 대표가 자동차 창틀에 들어가는 고무인 웨더스트립을 점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자율주행차 등 미래 차는 
차문이 위로 올라가는 디자인이 많다. 여기에 맞는 웨더스트립 디자인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화승R&A 제공이정두 화승R&A 대표가 자동차 창틀에 들어가는 고무인 웨더스트립을 점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자율주행차 등 미래 차는 차문이 위로 올라가는 디자인이 많다. 여기에 맞는 웨더스트립 디자인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화승R&A 제공
19일 경남 양산 산업단지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회사 화승R&A 공장에 들어서자 고무 냄새가 났다. 숙성된 고무 원료를 기계에 넣으니 가래떡처럼 긴 고무호스가 됐다. 한 직원이 호스에 약품을 처리해 금속 몰딩에 넣었더니 기다란 고무호스가 구부러진 모양으로 변했다. 구부러진 모양은 다 제각각이었다. 금속 몰딩 수는 4000여 개에 달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이정두 화승R&A 대표는 “자동차마다 냉각수 등이 흐르는 호스 모양이 제각각이다. 완성차가 엔진 등 중요 부품을 배치하면 거기에 맞는 호스를 설계하는 것이 우리의 역량”이라고 말했다.

화승R&A는 르까프로 유명한 화승그룹의 자동차 부품 계열사다. 1978년 동양화공으로 시작해 국내 자동차용 호스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 창틀에 들어가는 실링 고무 부품인 웨더스트립 시장 점유율은 60% 수준이다. 지난해 매출은 약 1조4430억 원. 현대·기아자동차뿐 아니라 제너럴모터스(GM), BMW, 폴크스바겐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에도 납품한다.

최근에는 중국 전기차 ‘바이턴’에 들어갈 10만 대 분량의 에어컨, 쿨런트(냉각) 호스를 수주해 화제가 됐다. 바이턴은 중국 스타트업 퓨처 모빌리티가 내놓은 전기차 브랜드다. BMW, 테슬라, 닛산자동차 출신 임원 등이 공동 설립한 회사로 텐센트, 폭스콘 등이 공동 출자했다. 이 대표는 “1년 동안 공을 들인 수주”라며 웃었다. 그는 “요즘 자동차 시장은 격변기다.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새로운 미래차 시대로 변하고 있다”며 “미래 가능성이 큰 중국 전기차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지속 가능성을 확보한 의미 있는 수주”라고 말했다.

중국은 세계 전기차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중국과 친환경차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자동차 부품 회사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봤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완성차와 달리 진입장벽이 낮아 수많은 정보기술(IT) 기업이 막대한 투자를 받아 생산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자동차 설계와 조립 경험이 없어 기술적 지원을 함께해줄 부품회사를 필요로 했다. 화승R&A는 아예 바이턴에 엔지니어를 파견해 호스 설계에 참여했다. 수주 계약도 따기 전이었지만 1년 동안 솔루션 지원에 나선 셈이다.

냉각계, 제동계 등에 들어가는 호스는 언뜻 보면 단순한 제조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설계가 핵심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체역학, 공기역학을 이해해 유체가 잘 흐르도록, 브레이크 압력을 잘 견디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전기차 시대에는 호스 속을 흐르는 냉각수 등 유체 소리가 덜 나도록 최적의 각도를 찾아야 한다. 내연기관 엔진에 비해 전기차 배터리는 조용하기 때문이다.

화승R&A는 3분기(7∼9월) 연결기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2% 오르고, 영업이익도 흑자를 내는 등 최근 자동차 위기 속에서도 선방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비중은 65%가량. BMW 폴크스바겐 등 글로벌 고객사를 늘려 오고, 2013년부터 산학협력을 통해 전기차 연구개발(R&D)에 투자한 것이 득이 됐다.

이 대표는 “과거에는 대기업이 설계해준 대로 만들었지만 10여 년 전부터 GM을 시작으로 폴크스바겐 다임러 BMW 등 글로벌 완성차 고객을 늘려 나가면서 설계 능력과 R&D 역량을 키웠다”며 “꾸준히 세계 자동차 시장 문을 두드리며 고객 다변화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산=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