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모비스가 4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연구개발(R&D)을 위해 외국인을 본사 임원으로 영입했다. 자동차 기술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외부의 인재 영입과 협력으로 새로운 기술을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모비스는 최근 자율주행차의 원천기술인 센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미국인 그레고리 버라토프 박사를 상무로 영입했다고 12일 밝혔다. 앞서 5월에는 독일인인 미르코 고에츠 박사를 이사로 채용한 사실도 이날 공개했다. 글로벌 부품업체인 콘티넨탈 출신의 버라토프 상무는 자율주행차 기술의 핵심인 센서 및 이미지 처리 분야의 전문가다. 세계적인 램프 업체인 독일 헬라 출신의 고에츠 이사는 미래차의 램프 핵심 기술을 확보할 예정이다. 현대모비스 측은 “자동차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자체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해외의 우수 인재 영입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자동차에 전체 매출의 70%가량을 의존하는 현대모비스가 외부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선 것은 최근 현대차그룹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 현대차그룹이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부품에도 그에 맞춰 다양한 기술을 빠르게 적용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정주영 명예회장 시절부터 경영철학으로 자리 잡은 ‘기술자립주의’에서 벗어나 개방과 협업을 통한 성장 전략을 택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커넥티드카의 핵심 기술을 세계 최대의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시스코와 협업해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친환경차 부문에서는 독자 노선을 걸어왔지만 커넥티드카 개발부터는 개방과 협업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올해 6월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CES 아시아 2017’에서 중국 최대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바이두와의 협업도 선언했다. 향후 통신형 내비게이션인 ‘바이두 맵오토’ 등을 자사 차량에 탑재해 바이두의 기술과 데이터를 이용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자동차 업체 중 이례적으로 자체기술 개발을 통해 철강(현대제철)부터 부품(현대모비스 등 10곳), 완성차(현대·기아차)까지 전 과정을 직접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를 추구해왔다. 강력한 통제로 품질을 관리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 시장이 내연기관 중심에서 친환경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등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이 불가피해졌다. 완성차 업체가 광범위한 분야에서 독자적인 R&D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도 스마트폰처럼 플랫폼화되면서 여러 분야의 사업자들이 함께 생태계를 만들 필요성도 커졌다. 2015년 일본 도요타가 수소연료전지차를 개발한 이후 특허를 무상으로 공개해 외부와의 협업을 추구한 것은 하나의 사례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현대차그룹이 내연기관 자동차의 품질 관리를 위해 수직계열화가 필요했지만 앞으로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수평적 협업체제를 더욱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1998년 기아차를 인수한 이후 20년 가까이 인수합병(M&A)에 나서지 않은 현대차그룹이 새로운 기회를 엿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현대차는 국내는 물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쏟아진 재규어, 랜드로버 등 고급 브랜드의 인수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국적기업인 르노닛산이 지난해 미쓰비시를 인수하면서 연간 판매량을 1000만 대 수준으로 늘리고, 프랑스의 푸조시트로엥그룹도 지엠(GM)의 유럽 사업부문 인수에 나서면서 자동차 업계가 몸집을 키우는 상황에 대응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정세진 mint4a@donga.com·곽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