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세상만車]서울모터쇼, 창조적 파괴가 필요한 시점

석동빈 기자

입력 2017-03-16 03:00:00 수정 2017-03-16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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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5월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1회 서울 모터쇼. 당시 이홍구 국무총리가 전시된 자동차에 탑승해 환하게 웃고 있다. 세계적으로 모터쇼의 역사는 120년에 이르지만 기본적인 전시 형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한국정책방송원 제공
석동빈 기자
7080세대는 집 안 구석 어딘가에 이사할 때만 꺼내 보는 LP 레코드판 몇 장을 꼬불쳐놓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들국화’ ‘이문세’ ‘Queen’ ‘Eagles’ ‘Scorpions’ ‘Kiss’….

지난 30년간 음반시장의 변화는 드라마틱합니다. LP와 카세트테이프로 아날로그 시대가 끝나고 디지털 시대로 넘어와서 다시 CD, MP3에 이어 현재는 스트리밍이 주류 매체가 됐습니다. 미리 대비하지 못한 음반업체와 기기업체는 소멸됐죠. 음반 기술이 변하는 과정에서 보수적인 뮤지션이나 사업자, 소비자들은 저항했고 때로는 대중적 확산이 지체되기도 했지만 결국 변화의 큰 물결은 도도히 흘러갔습니다.

기업 컨설턴트인 제프리 무어 박사의 ‘캐즘이론(Chasm Theory)’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제품은 확산 과정에서 마치 단절된 깊은 계곡을 지나는 것처럼 정체기를 거친 후 급속히 대중화된다고 합니다.

음악 전달 수단의 변천 과정과 마찬가지로 이동수단도 마차에서 증기기관과 내연기관, 그리고 현재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로 진화하는 방식이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기술 발달에 따라 임계점을 지나면 물이 갑자기 끓어오르는 것처럼 확산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는 것이죠.

자동차의 기술 표준이 변하면 관련 문화도 약간의 시차를 두고 바뀌기 마련입니다. 내연기관의 발전과 궤적을 함께했던 모터쇼가 대표적입니다. 자동차에 전동(電動), 자율주행, 커넥티드 같은 첨단 정보기술(IT) 시스템이 접목되면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가전전시회(CES)는 기존 세계 5대 모터쇼보다 주목도가 높아졌습니다. 특히 올해 1월 CES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국제오토쇼는 크게 위축된 모습이어서 측은함 마저 자아냈습니다. 이제 모터쇼도 바뀔 때가 됐다는 메시지입니다.

세계 최초의 모터쇼는 1897년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였습니다. 120년이 지나는 동안 전시되는 자동차나 참여 업체는 달라졌지만 브랜드별 전시 부스에서 신차와 콘셉트카를 진열해 보여주는 형식 자체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모바일 기기에서 직접 눈으로 보는 것보다 자세히 신차들을 볼 수 있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을 통해 직접 차에 타서 작동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터랙티브 세상이 열리면 자동차회사들은 수십억 원이 들어가는 모터쇼 참여를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모든 모터쇼가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겠지만 시장이 협소한 지역에서 특색 없이 열리는 모터쇼는 생각보다 빨리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31일부터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11회 서울모터쇼가 바로 그런 위치입니다. 1995년 국내 최초로 열린 서울모터쇼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세계 6위 자동차 생산국이고 한국 자동차 브랜드도 보유하고 있어서 그 나름대로 모터쇼의 규모를 유지해 왔지만 앞으로 의미 있게 존속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일부에서는 월드프리미어(세계 최초 공개)나 콘셉트카가 거의 없고 브랜드 참여도 빈약하다며 서울모터쇼 조직위원회를 성토하지만 유아적인 반찬투정과 다름이 없습니다. 한국은 연간 자동차시장 규모가 150만 대 안팎에 불과하지만 바로 옆 중국은 20배인 3000만 대의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입니다. 안타깝게도 서울모터쇼와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선 역시 세계 최대 규모의 상하이모터쇼가 열립니다.

어떤 자동차 브랜드도 상하이모터쇼를 포기하고 서울모터쇼에 자원과 인력을 투입하지 않습니다. 기업은 시장과 구매력이 있는 곳으로 몰리기 마련이니까요. 게다가 서울모터쇼는 해외 모터쇼의 모방일 뿐 새로운 테마나 트렌드를 제시하지 못해왔습니다. 관람객들 사이에선 “차라리 강남의 수입 중고차매장을 가는 게 더 볼 게 많다”는 푸념도 나옵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과감하게 기존의 경험과 형식을 파괴하고 기득권을 포기한다면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모터쇼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 전시관 형식의 고정된 틀을 벗어나 경쟁 차끼리 모아 놓거나 기념비적인 차들을 주제에 따라 모아 큐레이션할 수도 있겠죠. 특히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모빌리티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는 시점이어서 IT업계나 첨단 과학 교육관 형식 등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습니다.

물론 관료화한 자동차협회 조직도 혁신하고 모터쇼를 협회의 운영비 마련의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자세도 바뀌어야 가능합니다. 조직 운영과 한국형 모터쇼에 대한 새로운 정의 등 근원적인 혁신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10년 뒤에는 서울모터쇼의 존폐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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