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낮춰 주변을 돋보이게… 키 2.1m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미학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입력 2019-07-18 03:00 수정 2019-07-1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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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공사 끝 지난 4월 완공
덕수궁 돌담길과 높이 맞춰 ‘조화’… 성공회성당 자태 온전히 드러나
지하 3층까지 내려간 전시관, 땅속 깊이 감춰진 공간엔 햇살 가득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의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1층 평균 높이 2.11m로 4대문 안에서 가장 낮은 신축 건물이다. 덕분에 주변의 성공회성당과 덕수궁 돌담길, 서울시의회 등 역사적인 건물의 풍경이 오롯이 살아났다. 터미널7아키텍츠 제공
도시란 끊임없이 확장되고, 빽빽해져만 간다. 그런데 거꾸로 비우고, 낮춤으로써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물이 있다.

올해 4월. 서울 세종대로 한복판에 있는 성공회대성당 앞을 가로막던 ‘공사 중’ 칸막이가 걷혔을 때 가슴속이 시원해지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마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오렌지색 기와와 한국적 기와지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성공회성당의 자태가 온전히 드러났다. 수십 년 동안 그 앞을 지나다녔어도 성공회성당의 파사드(건축물 정면)가 이렇게 아름다웠는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어선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1층 규모로 높이가 평균 2.11m밖에 되지 않는다. 덕수궁 돌담길의 높이와 평행을 이루는 건물의 들어올려진 지붕은 성공회성당 앞마당과 연결되는 작은 광장이 된다. 높이는 그리 높지 않지만 덕수궁과 시청 앞 서울광장, 한국프레스센터, 동아일보 등 세종대로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색다른 도시 전망대 역할을 한다. 아직까지 성공회성당 주차장 지하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온전히 연결된 광장이 아닌 점은 아쉽다. 이 터는 고종이 1897년 환구단을 설치해 하늘에 제사 지내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소공로와 덕수궁 돌담길, 서학당길이 만나는 삼각형 모양의 광장. 고종 장례식 인산 행렬이 지나갔고, 3·1운동과 4·19혁명, 6·10항쟁의 중심지가 됐던 역사적인 장소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1937년 조선총독부 체신국 청사가 세워졌고, 2015년까지 5층짜리 국세청 남대문 별관이 들어서 시야가 가로막혀 있었다.

서울시가 2015년 이 건물 설계를 공모했을 당시 20개국 80개 팀이 응모했다고 한다. 대부분 일부를 광장으로 하고, 일부에 2∼3층의 건물을 세우는 형식이었다. 결국 평균 건물 높이를 낮추고 전시장을 땅속으로 감춘 작품이 당선됐다. 설계자인 조경찬 터미널7아키텍츠 대표는 “4대문 안에서 가장 낮은 건물”이라며 “덕수궁 돌담길과 성공회성당, 서울시의회, 김중업 건축가가 지은 세실극장 등 유서 깊은 건축물을 존중하고 도시의 역사적 풍경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건물을 최대한 낮췄다”고 말했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지하 3층 비움홀 광장에 마련된 입구.
1층 지붕이 워낙 낮아 지하에 무슨 전시공간이 있을까 싶어 실제로 이 전시장에 들어가 본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지하로 내려가면 의외로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지하 3층에 조성된 ‘비움홀’은 세종대로의 공기와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야외광장이다. 이 건물의 정면 입구는 지하 3층 광장에 마련돼 있고, 지하 1·2층에는 전시장과 자료실, 강연장, 테라스 등이 있다.

2000년 ‘베니스 국제 건축비엔날레’의 주제는 ‘덜 미학적인 것이 더 윤리적이다’(Less Aesthetics, More Ethics)였다. 서로 자신의 존재감만 뽐내려 경쟁하는 건축물 속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비움으로써 도시 전체의 풍경을 살리는 검박한 건축에 대한 화두였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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