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타, 급물살이 키워낸 바다의 맛이 숨어 있는 곳

동아일보

입력 2019-06-20 03:00 수정 2019-06-20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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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큐패스로 즐기는 일본 열도 맛 기행

히메시마의 구루마새우. 노지기쿠의 샤부샤부차림이다.

여행의 이유. 호기심(好奇心)이다. 그게 전부다. 난 궁금한 게 없다? 그렇다면 여행도 없다. 어쩌면 삶 자체가 없다 할 수 있겠다. 숨만 쉴 뿐 살아있는 게 아니니. 인류의 진화, 문명의 도약 모두 호기심의 산물 아닌가. 여행의 묘미도 거기서 온다. 몰랐던 걸 알게 될 때의 환희, 전광석화로 정신을 밝히는 삼쾌(三快·유쾌 상쾌 통쾌)의 통찰(洞察)이다.

규슈의 오이타, 거기서도 동부해안(태평양)으로 떠나는 이 여행도 호기심의 발로다. 그중에서도 먹을거리다. ‘여행은 먹는 게 첫째야‘라는 말. 지극히 옳다. 그런데 금강산도 식후경을 사수하는 마니아조차도 규슈 여행길에 ‘일본열도 맛 기행 1번지’ 오이타를 간과한다. 오해도 부지기수. 시모노세키(下關)를 복어 고장이라 칭하지만 사실 산지는 근처 분고수도(豊後水道)다. 그러니 제맛 보려면 우스키(오이타현)로 갈 일이다. 시모노세키는 대도시(도쿄 오사카 히로시마 나고야 등지)로 이걸 실어 나를 세토내해(內海) 수운(水運)의 종점이라 집하장이 된것 뿐이다.

료칸 마쓰우라의 가이세키 상에 오른 세키아지회.
일본 미식기행의 핵심은 생선. 그리고 그 맛이라면 자고로 물살 센 곳 것이 으뜸. 근육질이라 식감 좋고 지방이 풍부해 맛이 깊다. 그런데 섬나라 일본에서도 그런 게 나는 곳은 따로 있다. 물살 거센 분고수도다. 위치는 규슈(오이타현)와 시코쿠(에히메현) 사이. 두 사람이 손가락을 맞댄 형국의 세키자키(오이타현)와 사타미사키(에히메현) 두 반도(半島) 끝부터 남쪽 40km 쓰루미반도(오이타현)까지 폭 50km 해역이다. 여기 급물살은 태평양과 지중해 세토내해의 충돌 현상이다. 대양의 조류를 난데없는 병목(두 반도 사이 폭 17km 수도)이 막아선 데서 일어난다. 여기 생선의 쫄깃하고 깊은 맛은 그런 고역에서 든 것이다.

치킨하우스의 가라아게.

‘큰 몫’을 칭하는 오이타(大分)란 작명 배경도 거기다. 이건 메이지유신(1868년) 직후 단행한 폐번치현(幣藩致縣·봉건영지 번을 없애고 자치단체 현의 출범) 때 얻은 것. 이전 에도(江戶)시대(1603∼1868년)엔 부젠(豊前) 분고(豊後)라 불리던 두 구니(國·영주가 다스리던 영지)였다. 주목할 건 풍요로울 ‘풍’(豊)자. 그게 어디서 왔는지는 이젠 독자 스스로 안다. 교토의 황실과 상류사회, 에도(도쿄)의 쇼군과 막부 귀족이 시시때때로 즐겼을 생선이 바로 여기 것이니까. 시모노세키는 그때부터 이걸 운송하던 항구다. 이렇듯 오이타는 그 이름 그대로 먹을 것이 풍요롭다. 산큐패스로 분고수도와 그 이남 닛포(日豊)해안의 포구 및 섬(히메시마)으로 일본 최고의 생선 맛을 찾는 여행길로 안내한다.

세키아지: ‘세키’는 세키자키(사가노세키반도 동단), ‘아지’는 전갱이의 일본어. 전갱이는 이맘때쯤 우리와 일본 전국에서 흔히 잡히는 등 푸른 생선이다. 그런데 일본에선 ‘세키아지’라고 따로 부를 만큼 분고수도 전갱이를 선호한다. 그래서 가격도 보통의 10배 이상이다. 그래서 찾은 곳이 분고수도 어로의 주요 항도 사이키(佐佰)시. 이즈음 이곳에선 료칸마다 세키아지를 회로 낸다. 필자가 묵은 료칸 마쓰우라의 가이세키 상에 오른 전갱이의 탱탱한 식감, 시위 당긴 활 모습의 뼈대가 발산 중인 팽팽한 기세 이상이었다. 전갱이를 회로 먹어본 이는 안다. 살이 흐물흐물해 육질이랄 게 없는데도 엄청나게 잡히던 과거에 돼지사료와 비료로 쓴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도 여타 지역에선 발라낸 살을 칼로 다져 밥 위에 얹어 간장을 뿌려 먹는 어부의 간편식 정도로 낸다. 하지만 세키아지는 다르다. 이렇듯 가이세키의 프리마돈나로 등극했다. 응당한 대접이다.

세키자키 생선 중엔 고등어도 황후의 대접을 받는다. 이른바 ‘세키사바’인데 그 시식은 다음 취재로 미뤄둔 상태. 그러니 지금 이즈음 오이타 동부해안을 찾을 이유는 넘쳐난다. 세키사바 세키아지가 그것임은 물론이다.

사이키즈시: 사이키는 사이키만(灣)의 항구도시다. 에도시대에는 성시(城市)였고 지금은 중형 조선소에 기반을 둔 규슈 최대 면적의 자치도시다. 오이타 동부해안에서 가장 큰 항도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분고수도 생선의 상당량도 여기 집하된다. 그건 곧 여기 생선 맛을 보려면 사이키로 가야함이다. 사이키즈시(佐佰壽司)는 이곳 식당이 분고수도 생선으로만 빚는 스시(생선초밥). 이곳 황금어장 어종은 400여 개, 그중 스시로 쓰이는 건 50종. 그만큼 다양한 스시를 맛볼 수 있다. 랍스터 모습의 이세(伊勢)새우도 그중 하나. 일본인이라면 그 이름만 들어도 침을 삼키는데 연중 석 달(9월부터)간만 잡을 수 있는 만큼 가을 별미로 최고라 하겠다.

‘스시카이도’(海道)는 그런 스시천국 사이키의 심벌로 식당 열네 곳의 집합. 집집마다 제각각 맛을 내니 평생을 두고 찾아다닐 스시메구리(돌기)의 전범(典範)이 아닐 수 없다. 그중 JR사이키역 근방 ‘니시키(錦)즈시’(즈시카이도 지도의 11번 식당)를 찾았다. 열두 석 긴 테이블 건너 요리대에선 관록이 얼굴에 그대로 표출된 노장 요리사 두 분이 젊은 요리사와 함께 일한다.

주문한 건 오모테나시(2888엔) 스시. 그 맛은 입에 넣기도 전 이미 판명됐다. 초밥을 덮은 XL사이즈의 압도적 크기 살점에서다. 한입에 넣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라 여성 고객은 두세 번에 잘라 먹는다. 두 번째 놀란 건 쫄깃한 육질이다. 분고수도의 드센 물길이 입안으로 밀어닥쳤다. 마지막은 기대 이상의 고소함. 씹을수록 가중되는데 혹독한 물살을 이겨내느라 가까스로 비축한 지방의 숨은 맛이다. 그런데 비밀병기는 따로 있었다. 도려낸 오징어 살로 헤엄치는 모습의 잉어을 초밥으로 빚어낸 ‘단조(丹匠)’스시다. 가히 신의 솜씨라 할만 했다. 이들은 도쿄왕궁의 일왕 앞에서 이걸 빚어 헌상했다. 오징어는 도미와 함께 분고수도 생선의 왕좌에 올라있다.

가라아게: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居酒屋)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메뉴는 삶은 깍지콩과 ‘기름에 갓 튀겨낸 닭‘ 가라아게. 그런데 가라아게는 우리의 치킨과 완벽히 다르다. 원칙과 철학에선데 튀김옷은 가능한 한 얇게 입히고 간은 닭살에만 하며 닭도 반드시 생것만 쓴다. 신선한 살에 간직된 담백함을 최대로 끄집어내려는 생각이 그런 레시피의 발로다. 일본인의 가라아게 사랑은 우리의 치킨 이상이다. 그렇다 보니 전국구가 된지 오래. 하지만 그런 일본서도 ‘가라아게 성지’라 불리는 곳이 있다. 기타큐슈와 오이타, 두 국제공항 중간에 있는 나카쓰(中津·오이타현)시다.

오징어 살로 빚은 잉어모습의 단조스시
배경은 이렇다. 바닷가인 나카쓰는 주변 항도에 치여 포구 경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1950년대 정부는 내륙교통 분기점이란 점을 고려해 양계를 지원했다. 덕분에 닭 소비가 늘었고 그게 가라아게를 탄생시켰다. 관광안내소엔 ‘가라아케 성지 나카스 지도’까지 비치됐다. 등재된 전문점은 52곳. 그중 ‘치킨하우스’ 나카쓰 본점은 운영 방식이 독특했다. 오전 10시에 열어 오후 7시 반에 닫지만 식사는 네 시간(오전 11시∼오후 3시)만 낸다. 포장 판매가 주력이다. 그 맛, 과연 성지다웠다. 겉은 바삭, 속살은 촉촉. 생닭의 신선함이 튀김의 고소함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그걸 반찬 삼아 밥을 먹노라니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주인공이 된 듯했다.

니시키즈시의 스시세트 오모테나시.

구루마새우: 새우에 자동차를 칭하는 ‘구루마’(車)를 붙인 이유. 주산지 히메시마(姬島·구니사키반도 북방 5km)의 토박이조차 ‘엥?’ 하며 고개를 갸우뚱댄다. 이건 태국 시푸드 식당의 주요 식재료인 타이거프론(Tiger prawn). 우리나라에선 산 채로 껍질만 벗겨 생으로 먹는 보리새우가 이거다. 그걸 ‘오도리’(춤)라 부르는데 굽은 몸을 펼쳐 인간의 양손에서 빠져나가려 버둥대는 산 새우의 몸짓이 그 작명 배경이다. 그 이름 역시 원전은 일본. 구루마새우는 히메시마 바다에서 난다. 하지만 조업시즌이 짧아 대형 양식장에서 키워 공급 중. 워낙에 바다와 섬 모두 청정하다 보니 자연산이나 양식이나 큰 차이가 없다.

사이키항 소속 어선을 보여주는 가두홍보판
구루마새우를 맛본 건 토박이 부부의 서구식 펜션 노지기쿠(野路菊). 가이세키 요리상에선 과연 구루마새우가 주인공이다. 회로 또 샤부샤부로 익혀 두루 맛을 본다. 섬 특산 생선은 이 밖에도 많다. 도미 등등. 가레이라는 넙치회는 투명한 살이 복어를 연상시켰다. 섬은 한반도와 관련된 전설무대. 3세기 말 가락국 왕자가 청혼한 여인이 한반도에서 이리로 건너와 여신이 되었단다. ‘히메(姬)’라는 이름은 그렇게 해서 붙여졌다(역사서 ‘일본서기’). 이 섬의 유일한 온천 ‘효시미즈(拍子水)’는 목이 말랐던 여신이 손뼉을 쳐 열었다는 샘물. 탄산가스 풍부한 온천수(수온 24.9도)가 여전히 용출 중인데 그 옆 공중탕은 그걸 뜨거운 물에 섞어 공급한다.

자료제공: 산큐패스운영위원회 니시테쓰그룹(지원석)



■여행정보


산큐패스

규슈 7개 현 49개사의 2400개 노선버스(특급 포함)와 몇몇 페리선박을 정해진 기간 동안 무제한 탑승하는 승차권. 인접한 혼슈 남단의 시모노세키까지 적용된다. 특징이라면 네이버 전용 블로그 ‘큐슈타비’ 를 통해 규슈 전역의 여행지 정보는 물론 패스활용법과 이용요령을 한글로 제공하는 것. 덕분에 일본어를 할 줄 몰라도 계획만 면밀히 세우면 안전하고 정확하게 목적지를 찾아간다.

패스는 지역과 기간별로 네 종. 북부큐슈 3일권(7000엔),

남부큐슈 3일권(8000엔), 전 큐슈 3일권(1만1000엔)과

4일권(1만4000엔). 우리나라에서만 살 수 있다.


판매처


서울 △디스커버리큐슈: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종로타운 A동 907호,

부산 △투어베이: 부산진구 서면문화로27,

유원골든타워오피스텔 1409호.


찾아가기

패스는 하차할 때 운전사에게 보여준다.

나카쓰: 오이타공항에서 현북쾌속 노스라이너

(Northliner·버스)로 90분 소요. 20km 서쪽 내륙의

야바케이(耶馬溪)는 ‘일본 3대 신비경‘에 드는 수려한

용암대지 계곡. 사이클 전용도로가 있다.

사이키: 오이타공항, 오이타시는 직행. 벳푸 유후인은

오이타시에서 환승. 히타는 유후인에서 환승.

히메시마: 이미(伊美)항(오이타현 히가시구니사키군)

에서 페리(하루 12회 운항)로 20분 소요(570엔).

오이타공항∼우사(宇佐)역은 리무진버스,

우사역∼이미항은 시내버스로 각각 60분 소요.

히메시마섬 관광은 무료 순환버스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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